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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주석 - 호세아, 요엘

  • 소비자가 17,000원
  • 저자 J. M. 플래니건 / D. 길리란드 
  • 페이지수 384 
  • 출간일 2023.4.28 
  • 판형 신국판 150*225 
  • 판매가 15,300
  • 배송비배송지역에 따라 책정 (3만원 이상 무료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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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서문



호세아의 예언은 흔히 “12 선지서(The Twelve Prophets)”라고 부르는 선지서들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초기 랍비들은 이 선지서들을 그냥 “열두 권(The Twelve)”이라고 불렀으며, 다른 사람들은 “열두 선지자들의 책(The Twelve Prophet Book)” 또는 “열두 권의 책(The Book of the Twelve)”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종종 “소선지서(The Minor Prophet)”라고 불렀던 반면, 주석가 조지 애덤 스미스는 “이 책들은 작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모스서와 호세아서를 보면, 특별히 다른 선지서에서는 볼 수 없는, 원문이 가지고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웅장함과 장엄함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예언의 범위와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하기 때문이다”라고 논평했다. 어쨌든 “소(Minor)”라는 형용사가 붙어있다고 해서, 얕잡아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선지서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다니엘의 위대한 예언들보다 크기가 작을 뿐이지, 이전에 있었던 예언들에 비해서 중요성이 떨어지거나 권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초기 랍비들에 의해서 편찬된, 모세와 구전되는 랍비들의 법에 대한 해설서와 책으로 구성된 유대인 탈무드는 소선지서에 대해서, “우리 조상들은 그 책들이 작다는 이유로 소실되지 않도록 그것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호세아서는 소선지서 가운데 순서상 첫 번째일 뿐만 아니라, 많은 주석가에 따르면, 해석이 가장 어려운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스타일은 간결하지만 변화무쌍하며, 단조로우면서도 상당히 교훈적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매우 소중한 진리의 보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선지자와 그의 시대

‘호세아’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어서, 이 예언의 저자라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지파, 출생지 또는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그가 한 브에리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브에리’란 사람에 대해서도 그 이름은 헷 족속 유딧의 아버지이자, 에서의 장인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창 26:34)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성경 사전들은 “브에리(Beeri)”란 이름이 “나의 행복(my well)”이란 뜻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본래 “오세아” 또는 “호세아”로 불렸고, 이 이름의 뜻은 “구원자” 또는 “해방자”란 의미이다. “예수”의 히브리식 이름 또한 “예수아(Yeshua)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도 호세아였으며(왕하 15:30), 다윗 왕 아래 에브라임 자손의 한 지도자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대상 27:20), 느헤미야의 지도력 아래 함께 동역했던 한 왕족도 마찬가지였다(느 10:23).
호세아의 후기 생애과 성품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는 그에 관한 내용뿐이지만,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많은 연민과 사랑과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역은 백성들이 지은 죄들을 비난해야만 했을 때 두려움이 없었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북쪽 나라에 대한 그의 지식과 많은 언급은 그가 갈릴리 사람이었음을 암시해주고 있으며, 다른 갈릴리 출신 선지자였던 요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주의 말씀에 즉각적이고도 단호하게 반응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가정생활과 그가 처했던 삶의 환경들은 앞으로 자세히 다뤄질 것이다.
호세아서 주석서에서, 본문을 아름답게 묘사했던 조지 애덤 스미스는 호세아의 고향을 매우 웅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호세아서를 보면, 우리는 시리아 지역의 1년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어린 옥수수의 처음 난 새싹, 포도 덩굴 꽃에서 뿜어내는 향기,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 꽃을 만발하는 백합화, 산들바람을 따라가는 포도나무 넝쿨, 잡초로 덮인 밭, 햇빛과 산들바람 속에서 만개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감람나무, 에브라임 지역의 여름 아침의 안개와 이슬방울들을 볼 수 있으며, 산에서 불어오는 공기로 가득 찬 밤바람과 진동하는 레바논 백향목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어쩌면 산골짜기와 들판을 보면, 인간에게 더욱 친숙한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 타작마당에서 날리는 겨, 비둘기들이 탑에서 깜짝 놀라 날아가고, 새 사냥꾼들이 그물을 치는 모습 등, 놀리던 땅을 갈아엎고, 흙덩이가 부서지고, 추수하는 사람들과 곡식을 밟는 암송아지의 모습, 무거운 짐을 지고서 비탈진 길을 힘들게 오르는 마른 소 떼, 꼭대기까지 음식을 날라다 주는 친절한 일꾼들…어쨌든 호세아의 사랑은 높고, 그 사랑은 고즈넉이 솟아 있긴 하지만, 그런데도 그 사랑은 이 아래 평범한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또한 수많은 목가적인 원천의 변함없는 은혜를 머금고 있다.”
호세아서의 예언을 시작하는 구절은 호세아가 살던 시대에 대한 몇 가지 그림을 제공해준다.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 즉 열 개의 지파로 이루어진 북 왕국의 왕이었을 때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유다 왕들인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까지 계속되었다. 호세아의 사역이 시작된 정확한 날짜는 확정할 수는 없으며, 그의 사역 기간에 대해서도 주석가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 어떤 주석가는 호세아의 사역 기간을 40년 또는 50년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다른 주석가들은 60년, 70년, 심지어 80년 정도까지 제시하기도 하며, 심지어 더 길게 보는 사람도 있다. 여러 왕의 통치 기간을 계산해본 존 칼빈은 이렇게 썼다. “호세아는 아하스 왕이 통치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적어도 45년 이상 예언 사역을 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아하스가 통치했던 16년을 더하면, 그 기간은 61년 정도 된다. 히스기야의 통치 아래 그가 예언했던 연수가 남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60년 이상 그의 선지자 직분을 수행했고, 아마도 70년 이상 계속 감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선지자로서 수많은 세월을 누렸으며, 주로 북쪽 열 개의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왕국을 향해서 예언 사역을 했다는 사실 외에는 달리 말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첫 번째 성전 시대에 예언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여전히 이스라엘 땅에 머물고 있을 때 사역했다. 그는 위대한 선지자였던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사 1:1), 적어도 아모스와 부분적으로 함께 했다(암 1:1). 이 예언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일은 많은 죄와 하나님을 떠나는 일과 동반되어 나타난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BC 8세기 동안 일어났다.
호세아 선지자의 죽음과 매장지에 대해선 아무런 기록이 없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그는 갈릴리 사페드(Safed in Galilee)란 지역에 매장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입증할 방법이 없다.

호세아서에 담긴 메시지

호세아서는 혼합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갑작스럽고, 간결하며, 축약된 형태의 문장을 구사한다. 호세아서는 간음한 이스라엘, 북 왕국에 주는 심판의 메시지이긴 하지만, 밝은 미래에 대한 약속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다, 그리고 이방인들까지 포함된다. 호소와 약속, 그리고 비난과 협박 등이 사랑 안에서 함께 어우러진 메시지다.

분석

호세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어쩌면 주요한 세 부분으로 나눌 수도 있다.

• 1-3장. 이스라엘의 거절과 미래 회복이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간음과 구속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

• 4-13장. 심판의 정죄와 예언이 사랑과 자비의 메시지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 14장. 이스라엘 민족에게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호소와 그들이 구속받은 결과 따르게 될 구속의 영광이 소개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는 호세아서의 예언들

신약성경에서는 호세아의 예언이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거나 암시되어 있다. 로마서에서 호세아란 이름은 히브리어 호세아의 그리스 형태인 오씨(Osee, 롬 9:25, KJV를 보라)로 불리고 있다. 호세아의 예언은 마태복음 2:15, 9:13, 로마서 9:25-26, 고린도전서 15:55, 베드로전서 2:5,10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평


서문



호세아의 예언은 흔히 “12 선지서(The Twelve Prophets)”라고 부르는 선지서들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초기 랍비들은 이 선지서들을 그냥 “열두 권(The Twelve)”이라고 불렀으며, 다른 사람들은 “열두 선지자들의 책(The Twelve Prophet Book)” 또는 “열두 권의 책(The Book of the Twelve)”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종종 “소선지서(The Minor Prophet)”라고 불렀던 반면, 주석가 조지 애덤 스미스는 “이 책들은 작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모스서와 호세아서를 보면, 특별히 다른 선지서에서는 볼 수 없는, 원문이 가지고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웅장함과 장엄함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예언의 범위와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하기 때문이다”라고 논평했다. 어쨌든 “소(Minor)”라는 형용사가 붙어있다고 해서, 얕잡아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선지서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다니엘의 위대한 예언들보다 크기가 작을 뿐이지, 이전에 있었던 예언들에 비해서 중요성이 떨어지거나 권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초기 랍비들에 의해서 편찬된, 모세와 구전되는 랍비들의 법에 대한 해설서와 책으로 구성된 유대인 탈무드는 소선지서에 대해서, “우리 조상들은 그 책들이 작다는 이유로 소실되지 않도록 그것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호세아서는 소선지서 가운데 순서상 첫 번째일 뿐만 아니라, 많은 주석가에 따르면, 해석이 가장 어려운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스타일은 간결하지만 변화무쌍하며, 단조로우면서도 상당히 교훈적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매우 소중한 진리의 보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선지자와 그의 시대

‘호세아’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어서, 이 예언의 저자라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지파, 출생지 또는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그가 한 브에리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브에리’란 사람에 대해서도 그 이름은 헷 족속 유딧의 아버지이자, 에서의 장인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창 26:34)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성경 사전들은 “브에리(Beeri)”란 이름이 “나의 행복(my well)”이란 뜻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본래 “오세아” 또는 “호세아”로 불렸고, 이 이름의 뜻은 “구원자” 또는 “해방자”란 의미이다. “예수”의 히브리식 이름 또한 “예수아(Yeshua)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도 호세아였으며(왕하 15:30), 다윗 왕 아래 에브라임 자손의 한 지도자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대상 27:20), 느헤미야의 지도력 아래 함께 동역했던 한 왕족도 마찬가지였다(느 10:23).
호세아의 후기 생애과 성품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는 그에 관한 내용뿐이지만,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많은 연민과 사랑과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역은 백성들이 지은 죄들을 비난해야만 했을 때 두려움이 없었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북쪽 나라에 대한 그의 지식과 많은 언급은 그가 갈릴리 사람이었음을 암시해주고 있으며, 다른 갈릴리 출신 선지자였던 요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주의 말씀에 즉각적이고도 단호하게 반응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가정생활과 그가 처했던 삶의 환경들은 앞으로 자세히 다뤄질 것이다.
호세아서 주석서에서, 본문을 아름답게 묘사했던 조지 애덤 스미스는 호세아의 고향을 매우 웅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호세아서를 보면, 우리는 시리아 지역의 1년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어린 옥수수의 처음 난 새싹, 포도 덩굴 꽃에서 뿜어내는 향기,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 꽃을 만발하는 백합화, 산들바람을 따라가는 포도나무 넝쿨, 잡초로 덮인 밭, 햇빛과 산들바람 속에서 만개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감람나무, 에브라임 지역의 여름 아침의 안개와 이슬방울들을 볼 수 있으며, 산에서 불어오는 공기로 가득 찬 밤바람과 진동하는 레바논 백향목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어쩌면 산골짜기와 들판을 보면, 인간에게 더욱 친숙한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 타작마당에서 날리는 겨, 비둘기들이 탑에서 깜짝 놀라 날아가고, 새 사냥꾼들이 그물을 치는 모습 등, 놀리던 땅을 갈아엎고, 흙덩이가 부서지고, 추수하는 사람들과 곡식을 밟는 암송아지의 모습, 무거운 짐을 지고서 비탈진 길을 힘들게 오르는 마른 소 떼, 꼭대기까지 음식을 날라다 주는 친절한 일꾼들…어쨌든 호세아의 사랑은 높고, 그 사랑은 고즈넉이 솟아 있긴 하지만, 그런데도 그 사랑은 이 아래 평범한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또한 수많은 목가적인 원천의 변함없는 은혜를 머금고 있다.”
호세아서의 예언을 시작하는 구절은 호세아가 살던 시대에 대한 몇 가지 그림을 제공해준다.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 즉 열 개의 지파로 이루어진 북 왕국의 왕이었을 때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유다 왕들인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까지 계속되었다. 호세아의 사역이 시작된 정확한 날짜는 확정할 수는 없으며, 그의 사역 기간에 대해서도 주석가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 어떤 주석가는 호세아의 사역 기간을 40년 또는 50년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다른 주석가들은 60년, 70년, 심지어 80년 정도까지 제시하기도 하며, 심지어 더 길게 보는 사람도 있다. 여러 왕의 통치 기간을 계산해본 존 칼빈은 이렇게 썼다. “호세아는 아하스 왕이 통치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적어도 45년 이상 예언 사역을 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아하스가 통치했던 16년을 더하면, 그 기간은 61년 정도 된다. 히스기야의 통치 아래 그가 예언했던 연수가 남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60년 이상 그의 선지자 직분을 수행했고, 아마도 70년 이상 계속 감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선지자로서 수많은 세월을 누렸으며, 주로 북쪽 열 개의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왕국을 향해서 예언 사역을 했다는 사실 외에는 달리 말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첫 번째 성전 시대에 예언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여전히 이스라엘 땅에 머물고 있을 때 사역했다. 그는 위대한 선지자였던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사 1:1), 적어도 아모스와 부분적으로 함께 했다(암 1:1). 이 예언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일은 많은 죄와 하나님을 떠나는 일과 동반되어 나타난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BC 8세기 동안 일어났다.
호세아 선지자의 죽음과 매장지에 대해선 아무런 기록이 없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그는 갈릴리 사페드(Safed in Galilee)란 지역에 매장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입증할 방법이 없다.

호세아서에 담긴 메시지

호세아서는 혼합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갑작스럽고, 간결하며, 축약된 형태의 문장을 구사한다. 호세아서는 간음한 이스라엘, 북 왕국에 주는 심판의 메시지이긴 하지만, 밝은 미래에 대한 약속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다, 그리고 이방인들까지 포함된다. 호소와 약속, 그리고 비난과 협박 등이 사랑 안에서 함께 어우러진 메시지다.

분석

호세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어쩌면 주요한 세 부분으로 나눌 수도 있다.

• 1-3장. 이스라엘의 거절과 미래 회복이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간음과 구속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

• 4-13장. 심판의 정죄와 예언이 사랑과 자비의 메시지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 14장. 이스라엘 민족에게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호소와 그들이 구속받은 결과 따르게 될 구속의 영광이 소개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는 호세아서의 예언들

신약성경에서는 호세아의 예언이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거나 암시되어 있다. 로마서에서 호세아란 이름은 히브리어 호세아의 그리스 형태인 오씨(Osee, 롬 9:25, KJV를 보라)로 불리고 있다. 호세아의 예언은 마태복음 2:15, 9:13, 로마서 9:25-26, 고린도전서 15:55, 베드로전서 2:5,10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목차


약력

리뷰


상세설명

 

서문

 

 

 

호세아의 예언은 흔히 “12 선지서(The Twelve Prophets)라고 부르는 선지서들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초기 랍비들은 이 선지서들을 그냥 열두 권(The Twelve)이라고 불렀으며, 다른 사람들은 열두 선지자들의 책(The Twelve Prophet Book)또는 열두 권의 책(The Book of the Twelve)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종종 소선지서(The Minor Prophet)라고 불렀던 반면, 주석가 조지 애덤 스미스는 이 책들은 작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모스서와 호세아서를 보면, 특별히 다른 선지서에서는 볼 수 없는, 원문이 가지고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웅장함과 장엄함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예언의 범위와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하기 때문이다라고 논평했다. 어쨌든 (Minor)라는 형용사가 붙어있다고 해서, 얕잡아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선지서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다니엘의 위대한 예언들보다 크기가 작을 뿐이지, 이전에 있었던 예언들에 비해서 중요성이 떨어지거나 권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초기 랍비들에 의해서 편찬된, 모세와 구전되는 랍비들의 법에 대한 해설서와 책으로 구성된 유대인 탈무드는 소선지서에 대해서, “우리 조상들은 그 책들이 작다는 이유로 소실되지 않도록 그것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호세아서는 소선지서 가운데 순서상 첫 번째일 뿐만 아니라, 많은 주석가에 따르면, 해석이 가장 어려운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스타일은 간결하지만 변화무쌍하며, 단조로우면서도 상당히 교훈적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매우 소중한 진리의 보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선지자와 그의 시대

 

호세아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어서, 이 예언의 저자라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지파, 출생지 또는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그가 한 브에리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브에리란 사람에 대해서도 그 이름은 헷 족속 유딧의 아버지이자, 에서의 장인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26:34)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성경 사전들은 브에리(Beeri)란 이름이 나의 행복(my well)이란 뜻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본래 오세아또는 호세아로 불렸고, 이 이름의 뜻은 구원자또는 해방자란 의미이다. “예수의 히브리식 이름 또한 예수아(Yeshua)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도 호세아였으며(왕하 15:30), 다윗 왕 아래 에브라임 자손의 한 지도자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대상 27:20), 느헤미야의 지도력 아래 함께 동역했던 한 왕족도 마찬가지였다(10:23).

호세아의 후기 생애과 성품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는 그에 관한 내용뿐이지만,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많은 연민과 사랑과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역은 백성들이 지은 죄들을 비난해야만 했을 때 두려움이 없었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북쪽 나라에 대한 그의 지식과 많은 언급은 그가 갈릴리 사람이었음을 암시해주고 있으며, 다른 갈릴리 출신 선지자였던 요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주의 말씀에 즉각적이고도 단호하게 반응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가정생활과 그가 처했던 삶의 환경들은 앞으로 자세히 다뤄질 것이다.

호세아서 주석서에서, 본문을 아름답게 묘사했던 조지 애덤 스미스는 호세아의 고향을 매우 웅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호세아서를 보면, 우리는 시리아 지역의 1년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어린 옥수수의 처음 난 새싹, 포도 덩굴 꽃에서 뿜어내는 향기,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 꽃을 만발하는 백합화, 산들바람을 따라가는 포도나무 넝쿨, 잡초로 덮인 밭, 햇빛과 산들바람 속에서 만개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감람나무, 에브라임 지역의 여름 아침의 안개와 이슬방울들을 볼 수 있으며, 산에서 불어오는 공기로 가득 찬 밤바람과 진동하는 레바논 백향목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어쩌면 산골짜기와 들판을 보면, 인간에게 더욱 친숙한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 타작마당에서 날리는 겨, 비둘기들이 탑에서 깜짝 놀라 날아가고, 새 사냥꾼들이 그물을 치는 모습 등, 놀리던 땅을 갈아엎고, 흙덩이가 부서지고, 추수하는 사람들과 곡식을 밟는 암송아지의 모습, 무거운 짐을 지고서 비탈진 길을 힘들게 오르는 마른 소 떼, 꼭대기까지 음식을 날라다 주는 친절한 일꾼들어쨌든 호세아의 사랑은 높고, 그 사랑은 고즈넉이 솟아 있긴 하지만, 그런데도 그 사랑은 이 아래 평범한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또한 수많은 목가적인 원천의 변함없는 은혜를 머금고 있다.”

호세아서의 예언을 시작하는 구절은 호세아가 살던 시대에 대한 몇 가지 그림을 제공해준다.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 즉 열 개의 지파로 이루어진 북 왕국의 왕이었을 때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유다 왕들인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까지 계속되었다. 호세아의 사역이 시작된 정확한 날짜는 확정할 수는 없으며, 그의 사역 기간에 대해서도 주석가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 어떤 주석가는 호세아의 사역 기간을 40년 또는 50년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다른 주석가들은 60, 70, 심지어 80년 정도까지 제시하기도 하며, 심지어 더 길게 보는 사람도 있다. 여러 왕의 통치 기간을 계산해본 존 칼빈은 이렇게 썼다. “호세아는 아하스 왕이 통치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적어도 45년 이상 예언 사역을 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아하스가 통치했던 16년을 더하면, 그 기간은 61년 정도 된다. 히스기야의 통치 아래 그가 예언했던 연수가 남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60년 이상 그의 선지자 직분을 수행했고, 아마도 70년 이상 계속 감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선지자로서 수많은 세월을 누렸으며, 주로 북쪽 열 개의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왕국을 향해서 예언 사역을 했다는 사실 외에는 달리 말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첫 번째 성전 시대에 예언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여전히 이스라엘 땅에 머물고 있을 때 사역했다. 그는 위대한 선지자였던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1:1), 적어도 아모스와 부분적으로 함께 했다(1:1). 이 예언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일은 많은 죄와 하나님을 떠나는 일과 동반되어 나타난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BC 8세기 동안 일어났다.

호세아 선지자의 죽음과 매장지에 대해선 아무런 기록이 없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그는 갈릴리 사페드(Safed in Galilee)란 지역에 매장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입증할 방법이 없다.

 

호세아서에 담긴 메시지

 

호세아서는 혼합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갑작스럽고, 간결하며, 축약된 형태의 문장을 구사한다. 호세아서는 간음한 이스라엘, 북 왕국에 주는 심판의 메시지이긴 하지만, 밝은 미래에 대한 약속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다, 그리고 이방인들까지 포함된다. 호소와 약속, 그리고 비난과 협박 등이 사랑 안에서 함께 어우러진 메시지다.

 

분석

 

호세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어쩌면 주요한 세 부분으로 나눌 수도 있다.

 

1-3. 이스라엘의 거절과 미래 회복이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간음과 구속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

 

4-13. 심판의 정죄와 예언이 사랑과 자비의 메시지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14. 이스라엘 민족에게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호소와 그들이 구속받은 결과 따르게 될 구속의 영광이 소개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는 호세아서의 예언들

 

신약성경에서는 호세아의 예언이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거나 암시되어 있다. 로마서에서 호세아란 이름은 히브리어 호세아의 그리스 형태인 오씨(Osee, 9:25, KJV를 보라)로 불리고 있다. 호세아의 예언은 마태복음 2:15, 9:13, 로마서 9:25-26, 고린도전서 15:55, 베드로전서 2:5,10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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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서문



호세아의 예언은 흔히 “12 선지서(The Twelve Prophets)”라고 부르는 선지서들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초기 랍비들은 이 선지서들을 그냥 “열두 권(The Twelve)”이라고 불렀으며, 다른 사람들은 “열두 선지자들의 책(The Twelve Prophet Book)” 또는 “열두 권의 책(The Book of the Twelve)”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종종 “소선지서(The Minor Prophet)”라고 불렀던 반면, 주석가 조지 애덤 스미스는 “이 책들은 작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모스서와 호세아서를 보면, 특별히 다른 선지서에서는 볼 수 없는, 원문이 가지고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웅장함과 장엄함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예언의 범위와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하기 때문이다”라고 논평했다. 어쨌든 “소(Minor)”라는 형용사가 붙어있다고 해서, 얕잡아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선지서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다니엘의 위대한 예언들보다 크기가 작을 뿐이지, 이전에 있었던 예언들에 비해서 중요성이 떨어지거나 권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초기 랍비들에 의해서 편찬된, 모세와 구전되는 랍비들의 법에 대한 해설서와 책으로 구성된 유대인 탈무드는 소선지서에 대해서, “우리 조상들은 그 책들이 작다는 이유로 소실되지 않도록 그것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호세아서는 소선지서 가운데 순서상 첫 번째일 뿐만 아니라, 많은 주석가에 따르면, 해석이 가장 어려운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스타일은 간결하지만 변화무쌍하며, 단조로우면서도 상당히 교훈적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매우 소중한 진리의 보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선지자와 그의 시대

‘호세아’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어서, 이 예언의 저자라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지파, 출생지 또는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그가 한 브에리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브에리’란 사람에 대해서도 그 이름은 헷 족속 유딧의 아버지이자, 에서의 장인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창 26:34)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성경 사전들은 “브에리(Beeri)”란 이름이 “나의 행복(my well)”이란 뜻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본래 “오세아” 또는 “호세아”로 불렸고, 이 이름의 뜻은 “구원자” 또는 “해방자”란 의미이다. “예수”의 히브리식 이름 또한 “예수아(Yeshua)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도 호세아였으며(왕하 15:30), 다윗 왕 아래 에브라임 자손의 한 지도자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대상 27:20), 느헤미야의 지도력 아래 함께 동역했던 한 왕족도 마찬가지였다(느 10:23).
호세아의 후기 생애과 성품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는 그에 관한 내용뿐이지만,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많은 연민과 사랑과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역은 백성들이 지은 죄들을 비난해야만 했을 때 두려움이 없었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북쪽 나라에 대한 그의 지식과 많은 언급은 그가 갈릴리 사람이었음을 암시해주고 있으며, 다른 갈릴리 출신 선지자였던 요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주의 말씀에 즉각적이고도 단호하게 반응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가정생활과 그가 처했던 삶의 환경들은 앞으로 자세히 다뤄질 것이다.
호세아서 주석서에서, 본문을 아름답게 묘사했던 조지 애덤 스미스는 호세아의 고향을 매우 웅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호세아서를 보면, 우리는 시리아 지역의 1년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어린 옥수수의 처음 난 새싹, 포도 덩굴 꽃에서 뿜어내는 향기,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 꽃을 만발하는 백합화, 산들바람을 따라가는 포도나무 넝쿨, 잡초로 덮인 밭, 햇빛과 산들바람 속에서 만개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감람나무, 에브라임 지역의 여름 아침의 안개와 이슬방울들을 볼 수 있으며, 산에서 불어오는 공기로 가득 찬 밤바람과 진동하는 레바논 백향목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어쩌면 산골짜기와 들판을 보면, 인간에게 더욱 친숙한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 타작마당에서 날리는 겨, 비둘기들이 탑에서 깜짝 놀라 날아가고, 새 사냥꾼들이 그물을 치는 모습 등, 놀리던 땅을 갈아엎고, 흙덩이가 부서지고, 추수하는 사람들과 곡식을 밟는 암송아지의 모습, 무거운 짐을 지고서 비탈진 길을 힘들게 오르는 마른 소 떼, 꼭대기까지 음식을 날라다 주는 친절한 일꾼들…어쨌든 호세아의 사랑은 높고, 그 사랑은 고즈넉이 솟아 있긴 하지만, 그런데도 그 사랑은 이 아래 평범한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또한 수많은 목가적인 원천의 변함없는 은혜를 머금고 있다.”
호세아서의 예언을 시작하는 구절은 호세아가 살던 시대에 대한 몇 가지 그림을 제공해준다.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 즉 열 개의 지파로 이루어진 북 왕국의 왕이었을 때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유다 왕들인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까지 계속되었다. 호세아의 사역이 시작된 정확한 날짜는 확정할 수는 없으며, 그의 사역 기간에 대해서도 주석가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 어떤 주석가는 호세아의 사역 기간을 40년 또는 50년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다른 주석가들은 60년, 70년, 심지어 80년 정도까지 제시하기도 하며, 심지어 더 길게 보는 사람도 있다. 여러 왕의 통치 기간을 계산해본 존 칼빈은 이렇게 썼다. “호세아는 아하스 왕이 통치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적어도 45년 이상 예언 사역을 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아하스가 통치했던 16년을 더하면, 그 기간은 61년 정도 된다. 히스기야의 통치 아래 그가 예언했던 연수가 남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60년 이상 그의 선지자 직분을 수행했고, 아마도 70년 이상 계속 감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선지자로서 수많은 세월을 누렸으며, 주로 북쪽 열 개의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왕국을 향해서 예언 사역을 했다는 사실 외에는 달리 말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첫 번째 성전 시대에 예언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여전히 이스라엘 땅에 머물고 있을 때 사역했다. 그는 위대한 선지자였던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사 1:1), 적어도 아모스와 부분적으로 함께 했다(암 1:1). 이 예언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일은 많은 죄와 하나님을 떠나는 일과 동반되어 나타난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BC 8세기 동안 일어났다.
호세아 선지자의 죽음과 매장지에 대해선 아무런 기록이 없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그는 갈릴리 사페드(Safed in Galilee)란 지역에 매장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입증할 방법이 없다.

호세아서에 담긴 메시지

호세아서는 혼합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갑작스럽고, 간결하며, 축약된 형태의 문장을 구사한다. 호세아서는 간음한 이스라엘, 북 왕국에 주는 심판의 메시지이긴 하지만, 밝은 미래에 대한 약속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다, 그리고 이방인들까지 포함된다. 호소와 약속, 그리고 비난과 협박 등이 사랑 안에서 함께 어우러진 메시지다.

분석

호세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어쩌면 주요한 세 부분으로 나눌 수도 있다.

• 1-3장. 이스라엘의 거절과 미래 회복이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간음과 구속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

• 4-13장. 심판의 정죄와 예언이 사랑과 자비의 메시지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 14장. 이스라엘 민족에게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호소와 그들이 구속받은 결과 따르게 될 구속의 영광이 소개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는 호세아서의 예언들

신약성경에서는 호세아의 예언이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거나 암시되어 있다. 로마서에서 호세아란 이름은 히브리어 호세아의 그리스 형태인 오씨(Osee, 롬 9:25, KJV를 보라)로 불리고 있다. 호세아의 예언은 마태복음 2:15, 9:13, 로마서 9:25-26, 고린도전서 15:55, 베드로전서 2:5,10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평


서문



호세아의 예언은 흔히 “12 선지서(The Twelve Prophets)”라고 부르는 선지서들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초기 랍비들은 이 선지서들을 그냥 “열두 권(The Twelve)”이라고 불렀으며, 다른 사람들은 “열두 선지자들의 책(The Twelve Prophet Book)” 또는 “열두 권의 책(The Book of the Twelve)”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종종 “소선지서(The Minor Prophet)”라고 불렀던 반면, 주석가 조지 애덤 스미스는 “이 책들은 작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모스서와 호세아서를 보면, 특별히 다른 선지서에서는 볼 수 없는, 원문이 가지고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웅장함과 장엄함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예언의 범위와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하기 때문이다”라고 논평했다. 어쨌든 “소(Minor)”라는 형용사가 붙어있다고 해서, 얕잡아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선지서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다니엘의 위대한 예언들보다 크기가 작을 뿐이지, 이전에 있었던 예언들에 비해서 중요성이 떨어지거나 권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초기 랍비들에 의해서 편찬된, 모세와 구전되는 랍비들의 법에 대한 해설서와 책으로 구성된 유대인 탈무드는 소선지서에 대해서, “우리 조상들은 그 책들이 작다는 이유로 소실되지 않도록 그것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호세아서는 소선지서 가운데 순서상 첫 번째일 뿐만 아니라, 많은 주석가에 따르면, 해석이 가장 어려운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스타일은 간결하지만 변화무쌍하며, 단조로우면서도 상당히 교훈적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매우 소중한 진리의 보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선지자와 그의 시대

‘호세아’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어서, 이 예언의 저자라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지파, 출생지 또는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그가 한 브에리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브에리’란 사람에 대해서도 그 이름은 헷 족속 유딧의 아버지이자, 에서의 장인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창 26:34)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성경 사전들은 “브에리(Beeri)”란 이름이 “나의 행복(my well)”이란 뜻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본래 “오세아” 또는 “호세아”로 불렸고, 이 이름의 뜻은 “구원자” 또는 “해방자”란 의미이다. “예수”의 히브리식 이름 또한 “예수아(Yeshua)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도 호세아였으며(왕하 15:30), 다윗 왕 아래 에브라임 자손의 한 지도자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대상 27:20), 느헤미야의 지도력 아래 함께 동역했던 한 왕족도 마찬가지였다(느 10:23).
호세아의 후기 생애과 성품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는 그에 관한 내용뿐이지만,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많은 연민과 사랑과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역은 백성들이 지은 죄들을 비난해야만 했을 때 두려움이 없었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북쪽 나라에 대한 그의 지식과 많은 언급은 그가 갈릴리 사람이었음을 암시해주고 있으며, 다른 갈릴리 출신 선지자였던 요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주의 말씀에 즉각적이고도 단호하게 반응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가정생활과 그가 처했던 삶의 환경들은 앞으로 자세히 다뤄질 것이다.
호세아서 주석서에서, 본문을 아름답게 묘사했던 조지 애덤 스미스는 호세아의 고향을 매우 웅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호세아서를 보면, 우리는 시리아 지역의 1년 사계절을 다 느낄 수 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어린 옥수수의 처음 난 새싹, 포도 덩굴 꽃에서 뿜어내는 향기,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 꽃을 만발하는 백합화, 산들바람을 따라가는 포도나무 넝쿨, 잡초로 덮인 밭, 햇빛과 산들바람 속에서 만개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감람나무, 에브라임 지역의 여름 아침의 안개와 이슬방울들을 볼 수 있으며, 산에서 불어오는 공기로 가득 찬 밤바람과 진동하는 레바논 백향목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어쩌면 산골짜기와 들판을 보면, 인간에게 더욱 친숙한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 타작마당에서 날리는 겨, 비둘기들이 탑에서 깜짝 놀라 날아가고, 새 사냥꾼들이 그물을 치는 모습 등, 놀리던 땅을 갈아엎고, 흙덩이가 부서지고, 추수하는 사람들과 곡식을 밟는 암송아지의 모습, 무거운 짐을 지고서 비탈진 길을 힘들게 오르는 마른 소 떼, 꼭대기까지 음식을 날라다 주는 친절한 일꾼들…어쨌든 호세아의 사랑은 높고, 그 사랑은 고즈넉이 솟아 있긴 하지만, 그런데도 그 사랑은 이 아래 평범한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또한 수많은 목가적인 원천의 변함없는 은혜를 머금고 있다.”
호세아서의 예언을 시작하는 구절은 호세아가 살던 시대에 대한 몇 가지 그림을 제공해준다.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 즉 열 개의 지파로 이루어진 북 왕국의 왕이었을 때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유다 왕들인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까지 계속되었다. 호세아의 사역이 시작된 정확한 날짜는 확정할 수는 없으며, 그의 사역 기간에 대해서도 주석가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 어떤 주석가는 호세아의 사역 기간을 40년 또는 50년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다른 주석가들은 60년, 70년, 심지어 80년 정도까지 제시하기도 하며, 심지어 더 길게 보는 사람도 있다. 여러 왕의 통치 기간을 계산해본 존 칼빈은 이렇게 썼다. “호세아는 아하스 왕이 통치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적어도 45년 이상 예언 사역을 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아하스가 통치했던 16년을 더하면, 그 기간은 61년 정도 된다. 히스기야의 통치 아래 그가 예언했던 연수가 남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60년 이상 그의 선지자 직분을 수행했고, 아마도 70년 이상 계속 감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선지자로서 수많은 세월을 누렸으며, 주로 북쪽 열 개의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왕국을 향해서 예언 사역을 했다는 사실 외에는 달리 말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첫 번째 성전 시대에 예언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여전히 이스라엘 땅에 머물고 있을 때 사역했다. 그는 위대한 선지자였던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사 1:1), 적어도 아모스와 부분적으로 함께 했다(암 1:1). 이 예언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일은 많은 죄와 하나님을 떠나는 일과 동반되어 나타난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BC 8세기 동안 일어났다.
호세아 선지자의 죽음과 매장지에 대해선 아무런 기록이 없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그는 갈릴리 사페드(Safed in Galilee)란 지역에 매장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입증할 방법이 없다.

호세아서에 담긴 메시지

호세아서는 혼합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갑작스럽고, 간결하며, 축약된 형태의 문장을 구사한다. 호세아서는 간음한 이스라엘, 북 왕국에 주는 심판의 메시지이긴 하지만, 밝은 미래에 대한 약속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다, 그리고 이방인들까지 포함된다. 호소와 약속, 그리고 비난과 협박 등이 사랑 안에서 함께 어우러진 메시지다.

분석

호세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어쩌면 주요한 세 부분으로 나눌 수도 있다.

• 1-3장. 이스라엘의 거절과 미래 회복이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간음과 구속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다.

• 4-13장. 심판의 정죄와 예언이 사랑과 자비의 메시지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 14장. 이스라엘 민족에게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호소와 그들이 구속받은 결과 따르게 될 구속의 영광이 소개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는 호세아서의 예언들

신약성경에서는 호세아의 예언이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거나 암시되어 있다. 로마서에서 호세아란 이름은 히브리어 호세아의 그리스 형태인 오씨(Osee, 롬 9:25, KJV를 보라)로 불리고 있다. 호세아의 예언은 마태복음 2:15, 9:13, 로마서 9:25-26, 고린도전서 15:55, 베드로전서 2:5,10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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