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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문서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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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전하는전도 문서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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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 감사를 드리며 계속해서 전도출판사를 위해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횃불주석-말라기

  • 소비자가 10,000원
  • 저자 필립 하딩 
  • 페이지수 208 
  • 출간일 2023. 1. 3 
  • 판형 신국판 150*225 
  • 판매가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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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말라기 메시지의 목적은 그의 시대에 영적인 부흥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도덕적이며 영적인 일탈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단호하고 확고한 열정을 가지고 말라기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진리를 떠난 것에 대해 책망했지만, 다른 한편 온유한 태도로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했다. 말라기는 율법을 믿지 않고 소홀히 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한 많은 사람의 교만하고 편협한 독선을 책망하면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격려했다.
서평

서 문



출판 관계자들은 “What the Bible Teaches”란 제목으로 신약성경 주석시리즈를 완간했기 때문에, 성경 전체 주석을 완결하기 위하여 이 구약성경 주석시리즈도 나올 수 있기를 고대해왔다. 그들은 서로 뜻을 모아 성경을 연구하고 또 묵상하는데 다가가기 쉽고 또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구약성경의 여러 책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주석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창세기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신자들의 관심에 부응하는 완결된 시리즈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원어에 능통한 학자들은 아니지만, 단어의 의미들과 유사한 문제들에 대해서 현대적 관점이 무엇인지 최상의 도움을 받고자 여러 학자의 의견을 수렴했다. 어쨌든 모든 저자는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경은 신뢰할 수 있고, 정확하며 또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롬 15:4)으로 믿는다. 이런 견해는 1999년 John Ritchie 출판에서 출간되었던 “The Believer’s Magazine”에 스티블리(Mr Stevely)가 기고한 일련의 글에서 볼 수 있다.

구약과 신약, 이 두 언약은 너무도 일치를 보이는데, 즉 구약성경의 원칙과 실례가 신약성경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 걸쳐서 발생하는 문제에 그대로 적용될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지식은 신약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사안이다. 특별히 주 예수께서는 너무도 자주 예언의 그림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 복음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주님은 구약성경을 이렇게 접근하는, 즉 우리를 위해 기록되어 있는 구약성경의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예표적 인물과 사건들을 우리 주님과 비교해보고, 또 그분에게만 적용되는 예언적 진술들과 주님을 끊임없이 탐색해보는 일의 본보기이다.

성경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이런 이해를 제시하고 있는, 이 책들의 주요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또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저자들에 의해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게 생각해보고 또 적용할 수 있도록 제시되고 있다.

학술적인 저서를 제작하려는 시도가 없다면, 전문적인 서적은 출간되기 어렵다. 저자들이 그저 그 정도 수준만을 고려하고 있다면, 관심은 언어학이나 다른 이슈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음역(transliteration)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음역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스트롱(Strong)에 의해서 고안된 숫자 시스템을 참고하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스트롱 성구 숫자 사전은 원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로 하여금 이 성구사전의 도움을 받아 원어를 직역할 수 있게 해준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신약성경의 단어 아래 이탤릭체로 표시된 숫자를 가지고 스트롱 성구사전(Strong’s Concordance)을 참조하여 성경을 음역하는 것이다.
널리 통용되고 있는 이런 음역 방식(the system of transliteration)은 해리스, 아처, 그리고 왈트케가 편집하고, 1980년 시카고에 있는 Moody Press가 출판한 구약신학사전(TWOT)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어쨌든 몇 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을 영어 철자로 고쳐 읽는 방식인 것이다.

성경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흠정역(킹제임스 성경)을 인용했다. 다른 성경번역이 인용된 경우에는 출처를 표시했다.

성경에서 사용하는 치수는 보통 규빗(cubit)으로 표시된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대략적으로 1규빗은 18인치(46cm)로 정했다.

주석서들이 대개 구절별 주해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공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차원에서, 성경 본문을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독자들이 이미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주석시리즈가 완성된다면, 열다섯 권이나 열여덟 권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구약성경 주석들은 성경에 있는 순서대로 출판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 시리즈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들이 주석서를 완성하는 순서대로 될 것이다.

W. S. Setevely
D. E. West
목차

서문…………………………………………………………………5

말라기 ………………………………………………………………9
말라기 서론………………………………………………………10
말라기 주해 1장…………………………………………………23
말라기 주해 2장…………………………………………………64
말라기 주해 3장…………………………………………………107
말라기 주해 4장 ………………………………………………156
신구약 중간기 …………………………………………………169
약력
필립 하딩(Phillip Harding)

남 웨일즈, 포트 탤봇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립 하딩은 1951년 19세에 구원을 받았고, 그의 아내 그웬과 더불어 포트 탤봇 모임(assembly in Port Talbot)에 영접을 받았다. 필립은 요크셔에 직장을 얻어 그리로 이사했고, 스켈만쏘르프(Skelmanthorpe)에서 20년을 살았다.
1969년 주의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지역에 있는 모임에서 천거를 받았다. 처음 1년 동안 북 웨일즈 지역에서 전도지를 나누어주면서 복음 전하는 일을 했고, 서 웨일즈에선 텐트를 치고 복음 전하는 일을 했으며, 여러 모임을 다니면서 복음 전하는 사역을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그리고 보츠와나에서 복음을 전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했다.
그는 디모데후서에 대한 주석서를 썼으며, “그리스도의 위격”이라는 책의 공동저자였으며, 기타 <Truth & Tidings>, <Words in Season>, <Believer’s Magazine>, 그리고 <Present Truth>라는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그의 사역과 설교는 여러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리뷰


상세설명

책의 위치

 

말라기는 예언서의 마지막 책일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이다. 구약성경은 에덴동산에서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또 하나님과 행복한 사귐을 누렸던 한 사람으로 시작된다. 구약성경은 사람이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서 타락하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상태로 끝난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임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말라기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 말라기서는 침례 요한과(3:1, 1:2), 주님(3:1, 4:2)의 오심을 예고한다. 우리가 말라기서에서 볼 수 있는 실재가 없는 경건의 외적 모습으로 가득한 백성들의 일반적인 상태는 사복음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말라기서 316-18절의 주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남은 자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시작하는 몇 개의 첫 장에 나오는 신실한 남은 자들을 상기시켜준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기에(1:7, 9:10),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를 경외하는 경외심이라는 특징으로 덧입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며(8:13), 또한 풍성한 삶을 살게 해주는 생명의 샘이다(14:27, 19:23).

 

말라기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신적인 영감을 받은 성경의 형태로 자신의 말씀을 주시는 일을 멈추셨는데, 요한의 탄생에 관하여 천사의 메시지가 사가랴에게 전해질 때까지(1:11-17)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멈추셨다. 말라기 이후 400년 동안 더이상 하나님의 계시는 없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이다. 이 기간을 가리켜, 신구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라고 부르는데,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간략하게 검토해볼 것이다.

 

책의 시기

 

말라기서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기록된 6권의 성경 중 하나다. 어떤 사람들은 에스더서를 제외시키고 싶어하지만, 본 주석의 저자는 에스더서를 포함해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를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성경으로 본다. 느헤미야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역사서인 반면, 말라기는 마지막 예언서다. 말라기는 포로기 이후, 성전 재건과(1:10, 3:1-10) 공적 예배를 회복(1:6-14)한 후에 예언사역을 하였으며, 그때 유다는 바사(Persia)의 속국으로서 한 지방에 속해 있었다(1:8, “너희 총독”)는 사실은 예언서 자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말라기서는 학개서와 스가랴서, 그리고 에스라서의 처음 여섯 개의 장에 기록된 사건들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느헤미야와 말라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가 바로잡고자 했던 상황이(13), 말라기가 정죄하는 바로 그 상황이기 때문이다. 학개와 스가랴가 성전 건축을 위해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지원했던 것처럼, 말라기는 개혁에 힘쓰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지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느헤미야가 선지자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느헤미야 67절에 암시되어 있다. “두 번째 성전이 기원전 516년에 완공되었다는 사실과 느헤미야서가 BC 445년 아닥사스다(Artaxerxes) 20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BC 432년에 그가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했다(13:4-31)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S. R. Driver). 느헤미야가 돌아왔을 때 볼 수 있었던 학대와 말라기가 책망했던 학대의 밀접한 유사성은, 이 예언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두 번째 방문한 후(BC 432) 또는 그가 예루살렘에 없었던 기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어쨌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학대가 만연했음을 발견했다는 점은 말라기가 느헤미야가 돌아올 때까지 그의 예언 사역을 시작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BC 420년이라는 시기가 제안되어 왔다. 주석가의 대부분은 말라기의 기간이 BC 450년에서 400년 사이였다는 것에 동의한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책을 BC 540년에 기록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책의 백성

 

말라기의 사역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대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바벨론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29:10-1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약속을 지키셨다) 돌아온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고(1:9,11, 9:5), 하나님의 집을 재건하려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으며(1), 또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3).

말라기를 읽어보면, 한때 헌신과 결단, 자기희생과 영적 활력이 특징이었던 남은 자들이 도덕적, 영적 부패 상태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락과 퇴보가 진행되었기에, 이로써 말라기의 사역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드리고 또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싶어 하는 열망과 열정이 부족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시대적인 명령에 순종하는 일에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은 없고, 충성스럽지 못하며, 형식주의와 부도덕함과 부정직함과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바벨론에서 처음 돌아왔을 때의 남은 자들과 빌라델비아의 교회(3:7-13), 그리고 말라기 시대의 남은 자들과 라오디게아의 교회(3:14-22)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오늘날 모임들은 주의 이름으로만 모이고 또 주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모임이 말라기 시대의 상황이나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황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신자들에게 전해진 엄청난 진리의 빛에 비추어 보자면, 진리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받드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절반의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은 분명 하나님께 역겨운 것이다. 말라기가 힘써 전달하려고 했던 사역은 그러한 끔찍한 상황에 처한 모든 신자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은 자들 가운데에는 말라기에 의해 격려를 받은, 더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었다. 말라기는 그들에게 주님 오심의 확실성을 상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기념책(God’s book of remembrance)에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jewels)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3:16-18).

 

책의 예언자

 

이 책 자체에서 수집할 수 있는 사실 외에 말라기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그의 혈통, 출생지, 예언의 시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말라기가 실제 사람의 이름인지, 아니면 이 예언을 기록하는 일을 했던 기록자에게 주어졌던 직분을 가리키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이런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갈데아 역본은 그를 에스라로 잘못 인식했다. 하지만 에스라는 선지자로 불린 적이 없고 서기관으로 불렸으며, 말라기는 서기관으로 불린 적이 없고 선지자로 불렸기 때문이다(Jamieson, Fausset & Brown).

 

케일(C. F. Keil)은 이렇게 설명했다.

머리말에 개인적인 정보, 즉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나 출생지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은 오바댜서나 하박국서와 마찬가지다. 오바댜와 하박국서 또한 머리말에 오직 선지자의 이름만 제시하고 있을 뿐, 다른 개인적인 정보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유대의 전승에 따르면, 말라기는 학개와 스가랴와 더불어 대회당(Great Synagogue)의 일원이었다. 그는 엘리야와 같이 갑자기 역사의 현장에 나타난 것처럼 보이며, 침례 요한이 나타나기 전까지 하나님의 마지막 메신저였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백성들을 책망하는 일을 했는데, 그 이상의 기록은 없다. 말라기 선지자가 백성들의 죄를 정죄한 것과 느헤미야의 개혁을 비교해 보면, 말라기는 느헤미야와 동시대 사람으로 보인다(2:8과 느 13:15,19, 2:10과 느 13:23-27, 3:7-12과 느 13:10을 비교해보라). 그의 이름의 의미는 나의 사자(My Messenger)또는 여호와의 사자(Jehovah’s Me- ssenger)였다. 말라기의 예언에서 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의 사역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서, 어떤 주석가들은 말라기가 제사장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라기는 상황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에는 너희가 말하기를(ye say)”이라는 말이 11회 등장한다. 그런데도 주님은 항상 백성들에게 답을 주셨다(말라기서에서 그러나(but)라는 단어가 나오는 부분을 잘 살펴보라).

 

말라기는 명확한 지침을 주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saith the Lord)라는 표현이 25회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 묘사된 상황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온 메시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유일한 치료법이기도 하다.

 

말라기는 백성들의 악행을 알았기 때문에 사역의 무게를 느꼈지만, 자신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임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와 진리 속에 담긴 부요함을 드러냈다. 따라서 이 책은 말라기의 정체성(곧 나의 사자)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만연된 상황에 대한 그의 이해와 그가 감당해야 했던 사역을 잘 드러내고 있다.

 

책의 목적

 

역사적 목적

말라기 메시지의 목적은 그의 시대에 영적인 부흥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도덕적이며 영적인 일탈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단호하고 확고한 열정을 가지고 말라기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진리를 떠난 것에 대해 책망했지만, 다른 한편 온유한 태도로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했다. 말라기는 율법을 믿지 않고 소홀히 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한 많은 사람의 교만하고 편협한 독선을 책망하면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격려했다.

 

예언적 목적

이 예언은 삼중적인 목적이 있다. 즉 말라기서는 메시아의 선두 주자(Forerunner)가 올 것이며, 이로써 자비의 때가 하나님의 진노의 날보다 앞설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3:1), 정련하시는 분으로서 주님이 모든 찌꺼기를 제거하고자 오실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3:2-3), 그리고 공의로운 해로서 주님이 심판을 집행하기 오실 것이지만, 여전히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시리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4:1-3) 기록되었다. 이 예언은 일반적으로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계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경고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또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적인 목적

다시 말해서, 말라기서 예언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즉 변함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밝히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맡기신 신성한 계시(즉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시대와 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영구적인 원칙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사역은 타락과 일탈이 일어나는 시대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는 사람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라기서는 주의 말씀의 짐이라(the burden of the word of the Lord, KJV을 보라)(1:1)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책의 세부 사항

 

이 책의 내용은 일정 기간 말라기에 의하여 구두(orally)로 전달되었던 것 같다. 이 예언의 주된 목적은 제사장들을 포함한 대다수 하나님의 백성들의 습관을 정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행들은 율법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 사이에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 예언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시행하는 개혁을 지원하고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책은 무관심과 부주의의 정신이 만연했음을 보여준다.

말라기는 백성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죄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었고, 따라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했던 그들의 주장이 행실과 불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라기 시대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상황은 오늘날 외적인 모양과 입술의 간증은 있지만, 실재성은 찾아보기 힘든 기독교계 사람들의 상태와 너무도 똑같다. 그는 진리를 진술하는 형식을 채택하고, 예상되는 이의제기 내용을 진술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이미 진술된 진리를 반복하고 입증하는 방식으로 답변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선지자들이 사용했던 하나의 주제를 수사학적으로 전개하는 대신에, 말라기는 질문과 답변을 통한 변증법을 사용한다. 이 예언의 두드러진 특징은, 여호와의 명령이 도전을 받는 8가지 상황들에 따라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여호와의 사랑에 대해서(1:2), 여호와의 이름을 경멸하는 것에 대해서(1:6), 그들의 제사로 인해 여호와를 더럽히는 것에 대해서(1:7), 결혼관계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일에 대해서(2:14), 여호와를 괴롭히는 일에 대해서(2:17), 여호와의 규례를 떠난 일에 대해서(3:7), 여호와의 것을 도적질한 일에 대해서(3:8), 그리고 말로 여호와를 대적하는 일에 대해서(3:13), 하나씩 다루고 있다. 계속 반복해서 자신들이 잘 섬기고 있다고 입술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마음으로는 자신을 떠난 것에 관하여 책망하셨고, 그들은 상황마다 그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혐의를 부정하며 반박했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그들이 완고한 상태에 빠져 있는 사태의 심각성을 현저하게 드러내는 것일 뿐이었다.

 

(F. C. Cook)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혐의에 대해서 도리어 질문하는 형태의 반박하는 답변이 피고인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청자(聽者)들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책망의 논지를 주장하고 설명하는 기회가 선지자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말라기는 공적인 예배나 예식의 순결함과 이스라엘의 독특한 성격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경외하는 태도와 신실함 또한 요구한다.

케일(C. F. Keil)은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 사이에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던 정신, 즉 바리새주의(Phariseeism)와 사두개주의(Saduceeism)로 고착화된 시대정신을 볼 수 있다. 가식적인 신앙이나 우상숭배와 같은 역겨운 종교심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통을 겪었던 백성에게는 완전히 혐오스럽게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더욱 세련된 형태의 우상숭배와 죽은 행실로 의를 쌓고자 하는 종교가 자리를 잡게 되었고, 죄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일도 없이 그저 하나님의 계명들을 겉으로만 순종하는 체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성전으로 돌아오시는 것이 기쁨과 위로의 때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스가랴와는 달리(2:10-12, 8:3), 말라기는 여호와께서 성전에 오시는 것은 곧 정화와 심판의 때가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3:1-3). 그 이유는 말라기 시대에 유다의 상태가 악화되었고, 성전이 재건된 이후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의 사랑을 경시하고 거절하는 백성들을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1:2-5). 이어서 그는 제사장들이 흠이 있는 희생제물을 바치고 또 거룩하지 못한 예배를 드리는 행위를 통해서 여호와를 무시하고 또 불경스러운 일을 자행하였기 때문에 여호와 이름의 영예와 존엄성을 모욕했음을 드러낸다(1:6-2:9). 그는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혼함으로써 민족적 소명을 무시하고 또 이스라엘인 아내와 이혼함으로써 저지른 배신과 부도덕함으로 인해서 주님의 거룩함을 더럽힌 일로 그들을 비난한다(2:10-17). 그는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고 또 악인들을 형벌하기 위하여 의로운 재판장으로 오시는 여호와의 오심을 선포한다(3:1-7). 그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의인보다 악인이 창성하기 때문에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자신들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에게 맞선다(3:8-15).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을 격려하고 또 미래 축복에 대한 약속을 소개함으로써 이 예언을 마치고 있다(3:16-4:6).

 

따라서 말라기는 하나님을 향한 그들 신앙의 불일치성과 불경스러운 태도를 지적한다. 그는 제사장들의 거룩하지 않은 행태를 책망하고, 그들이 망각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그분의 명령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혼에 대한 관행,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그들의 습관, 악인들의 악행에 대한 그들의 관용적인 태도를 비난한다. 그리고 그는 충성스러운 남은 자들이 해처럼 빛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피하라는 경고로 끝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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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말라기 메시지의 목적은 그의 시대에 영적인 부흥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도덕적이며 영적인 일탈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단호하고 확고한 열정을 가지고 말라기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진리를 떠난 것에 대해 책망했지만, 다른 한편 온유한 태도로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했다. 말라기는 율법을 믿지 않고 소홀히 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한 많은 사람의 교만하고 편협한 독선을 책망하면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격려했다.
서평

서 문



출판 관계자들은 “What the Bible Teaches”란 제목으로 신약성경 주석시리즈를 완간했기 때문에, 성경 전체 주석을 완결하기 위하여 이 구약성경 주석시리즈도 나올 수 있기를 고대해왔다. 그들은 서로 뜻을 모아 성경을 연구하고 또 묵상하는데 다가가기 쉽고 또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구약성경의 여러 책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주석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창세기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신자들의 관심에 부응하는 완결된 시리즈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원어에 능통한 학자들은 아니지만, 단어의 의미들과 유사한 문제들에 대해서 현대적 관점이 무엇인지 최상의 도움을 받고자 여러 학자의 의견을 수렴했다. 어쨌든 모든 저자는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경은 신뢰할 수 있고, 정확하며 또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롬 15:4)으로 믿는다. 이런 견해는 1999년 John Ritchie 출판에서 출간되었던 “The Believer’s Magazine”에 스티블리(Mr Stevely)가 기고한 일련의 글에서 볼 수 있다.

구약과 신약, 이 두 언약은 너무도 일치를 보이는데, 즉 구약성경의 원칙과 실례가 신약성경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 걸쳐서 발생하는 문제에 그대로 적용될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지식은 신약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사안이다. 특별히 주 예수께서는 너무도 자주 예언의 그림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 복음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주님은 구약성경을 이렇게 접근하는, 즉 우리를 위해 기록되어 있는 구약성경의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예표적 인물과 사건들을 우리 주님과 비교해보고, 또 그분에게만 적용되는 예언적 진술들과 주님을 끊임없이 탐색해보는 일의 본보기이다.

성경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이런 이해를 제시하고 있는, 이 책들의 주요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또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저자들에 의해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게 생각해보고 또 적용할 수 있도록 제시되고 있다.

학술적인 저서를 제작하려는 시도가 없다면, 전문적인 서적은 출간되기 어렵다. 저자들이 그저 그 정도 수준만을 고려하고 있다면, 관심은 언어학이나 다른 이슈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음역(transliteration)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음역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스트롱(Strong)에 의해서 고안된 숫자 시스템을 참고하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스트롱 성구 숫자 사전은 원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로 하여금 이 성구사전의 도움을 받아 원어를 직역할 수 있게 해준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신약성경의 단어 아래 이탤릭체로 표시된 숫자를 가지고 스트롱 성구사전(Strong’s Concordance)을 참조하여 성경을 음역하는 것이다.
널리 통용되고 있는 이런 음역 방식(the system of transliteration)은 해리스, 아처, 그리고 왈트케가 편집하고, 1980년 시카고에 있는 Moody Press가 출판한 구약신학사전(TWOT)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어쨌든 몇 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을 영어 철자로 고쳐 읽는 방식인 것이다.

성경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흠정역(킹제임스 성경)을 인용했다. 다른 성경번역이 인용된 경우에는 출처를 표시했다.

성경에서 사용하는 치수는 보통 규빗(cubit)으로 표시된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대략적으로 1규빗은 18인치(46cm)로 정했다.

주석서들이 대개 구절별 주해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공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차원에서, 성경 본문을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독자들이 이미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주석시리즈가 완성된다면, 열다섯 권이나 열여덟 권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구약성경 주석들은 성경에 있는 순서대로 출판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 시리즈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들이 주석서를 완성하는 순서대로 될 것이다.

W. S. Setevely
D. E. West
목차

서문…………………………………………………………………5

말라기 ………………………………………………………………9
말라기 서론………………………………………………………10
말라기 주해 1장…………………………………………………23
말라기 주해 2장…………………………………………………64
말라기 주해 3장…………………………………………………107
말라기 주해 4장 ………………………………………………156
신구약 중간기 …………………………………………………169
약력
필립 하딩(Phillip Harding)

남 웨일즈, 포트 탤봇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립 하딩은 1951년 19세에 구원을 받았고, 그의 아내 그웬과 더불어 포트 탤봇 모임(assembly in Port Talbot)에 영접을 받았다. 필립은 요크셔에 직장을 얻어 그리로 이사했고, 스켈만쏘르프(Skelmanthorpe)에서 20년을 살았다.
1969년 주의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지역에 있는 모임에서 천거를 받았다. 처음 1년 동안 북 웨일즈 지역에서 전도지를 나누어주면서 복음 전하는 일을 했고, 서 웨일즈에선 텐트를 치고 복음 전하는 일을 했으며, 여러 모임을 다니면서 복음 전하는 사역을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그리고 보츠와나에서 복음을 전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했다.
그는 디모데후서에 대한 주석서를 썼으며, “그리스도의 위격”이라는 책의 공동저자였으며, 기타 <Truth & Tidings>, <Words in Season>, <Believer’s Magazine>, 그리고 <Present Truth>라는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그의 사역과 설교는 여러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리뷰


상세설명

책의 위치

 

말라기는 예언서의 마지막 책일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이다. 구약성경은 에덴동산에서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또 하나님과 행복한 사귐을 누렸던 한 사람으로 시작된다. 구약성경은 사람이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서 타락하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상태로 끝난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임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말라기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 말라기서는 침례 요한과(3:1, 1:2), 주님(3:1, 4:2)의 오심을 예고한다. 우리가 말라기서에서 볼 수 있는 실재가 없는 경건의 외적 모습으로 가득한 백성들의 일반적인 상태는 사복음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말라기서 316-18절의 주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남은 자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시작하는 몇 개의 첫 장에 나오는 신실한 남은 자들을 상기시켜준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기에(1:7, 9:10),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를 경외하는 경외심이라는 특징으로 덧입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며(8:13), 또한 풍성한 삶을 살게 해주는 생명의 샘이다(14:27, 19:23).

 

말라기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신적인 영감을 받은 성경의 형태로 자신의 말씀을 주시는 일을 멈추셨는데, 요한의 탄생에 관하여 천사의 메시지가 사가랴에게 전해질 때까지(1:11-17)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멈추셨다. 말라기 이후 400년 동안 더이상 하나님의 계시는 없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이다. 이 기간을 가리켜, 신구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라고 부르는데,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간략하게 검토해볼 것이다.

 

책의 시기

 

말라기서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기록된 6권의 성경 중 하나다. 어떤 사람들은 에스더서를 제외시키고 싶어하지만, 본 주석의 저자는 에스더서를 포함해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를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성경으로 본다. 느헤미야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역사서인 반면, 말라기는 마지막 예언서다. 말라기는 포로기 이후, 성전 재건과(1:10, 3:1-10) 공적 예배를 회복(1:6-14)한 후에 예언사역을 하였으며, 그때 유다는 바사(Persia)의 속국으로서 한 지방에 속해 있었다(1:8, “너희 총독”)는 사실은 예언서 자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말라기서는 학개서와 스가랴서, 그리고 에스라서의 처음 여섯 개의 장에 기록된 사건들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느헤미야와 말라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가 바로잡고자 했던 상황이(13), 말라기가 정죄하는 바로 그 상황이기 때문이다. 학개와 스가랴가 성전 건축을 위해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지원했던 것처럼, 말라기는 개혁에 힘쓰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지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느헤미야가 선지자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느헤미야 67절에 암시되어 있다. “두 번째 성전이 기원전 516년에 완공되었다는 사실과 느헤미야서가 BC 445년 아닥사스다(Artaxerxes) 20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BC 432년에 그가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했다(13:4-31)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S. R. Driver). 느헤미야가 돌아왔을 때 볼 수 있었던 학대와 말라기가 책망했던 학대의 밀접한 유사성은, 이 예언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두 번째 방문한 후(BC 432) 또는 그가 예루살렘에 없었던 기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어쨌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학대가 만연했음을 발견했다는 점은 말라기가 느헤미야가 돌아올 때까지 그의 예언 사역을 시작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BC 420년이라는 시기가 제안되어 왔다. 주석가의 대부분은 말라기의 기간이 BC 450년에서 400년 사이였다는 것에 동의한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책을 BC 540년에 기록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책의 백성

 

말라기의 사역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대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바벨론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29:10-1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약속을 지키셨다) 돌아온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고(1:9,11, 9:5), 하나님의 집을 재건하려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으며(1), 또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3).

말라기를 읽어보면, 한때 헌신과 결단, 자기희생과 영적 활력이 특징이었던 남은 자들이 도덕적, 영적 부패 상태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락과 퇴보가 진행되었기에, 이로써 말라기의 사역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드리고 또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싶어 하는 열망과 열정이 부족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시대적인 명령에 순종하는 일에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은 없고, 충성스럽지 못하며, 형식주의와 부도덕함과 부정직함과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바벨론에서 처음 돌아왔을 때의 남은 자들과 빌라델비아의 교회(3:7-13), 그리고 말라기 시대의 남은 자들과 라오디게아의 교회(3:14-22)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오늘날 모임들은 주의 이름으로만 모이고 또 주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모임이 말라기 시대의 상황이나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황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신자들에게 전해진 엄청난 진리의 빛에 비추어 보자면, 진리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받드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절반의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은 분명 하나님께 역겨운 것이다. 말라기가 힘써 전달하려고 했던 사역은 그러한 끔찍한 상황에 처한 모든 신자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은 자들 가운데에는 말라기에 의해 격려를 받은, 더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었다. 말라기는 그들에게 주님 오심의 확실성을 상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기념책(God’s book of remembrance)에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jewels)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3:16-18).

 

책의 예언자

 

이 책 자체에서 수집할 수 있는 사실 외에 말라기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그의 혈통, 출생지, 예언의 시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말라기가 실제 사람의 이름인지, 아니면 이 예언을 기록하는 일을 했던 기록자에게 주어졌던 직분을 가리키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이런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갈데아 역본은 그를 에스라로 잘못 인식했다. 하지만 에스라는 선지자로 불린 적이 없고 서기관으로 불렸으며, 말라기는 서기관으로 불린 적이 없고 선지자로 불렸기 때문이다(Jamieson, Fausset & Brown).

 

케일(C. F. Keil)은 이렇게 설명했다.

머리말에 개인적인 정보, 즉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나 출생지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은 오바댜서나 하박국서와 마찬가지다. 오바댜와 하박국서 또한 머리말에 오직 선지자의 이름만 제시하고 있을 뿐, 다른 개인적인 정보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유대의 전승에 따르면, 말라기는 학개와 스가랴와 더불어 대회당(Great Synagogue)의 일원이었다. 그는 엘리야와 같이 갑자기 역사의 현장에 나타난 것처럼 보이며, 침례 요한이 나타나기 전까지 하나님의 마지막 메신저였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백성들을 책망하는 일을 했는데, 그 이상의 기록은 없다. 말라기 선지자가 백성들의 죄를 정죄한 것과 느헤미야의 개혁을 비교해 보면, 말라기는 느헤미야와 동시대 사람으로 보인다(2:8과 느 13:15,19, 2:10과 느 13:23-27, 3:7-12과 느 13:10을 비교해보라). 그의 이름의 의미는 나의 사자(My Messenger)또는 여호와의 사자(Jehovah’s Me- ssenger)였다. 말라기의 예언에서 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의 사역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서, 어떤 주석가들은 말라기가 제사장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라기는 상황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에는 너희가 말하기를(ye say)”이라는 말이 11회 등장한다. 그런데도 주님은 항상 백성들에게 답을 주셨다(말라기서에서 그러나(but)라는 단어가 나오는 부분을 잘 살펴보라).

 

말라기는 명확한 지침을 주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saith the Lord)라는 표현이 25회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 묘사된 상황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온 메시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유일한 치료법이기도 하다.

 

말라기는 백성들의 악행을 알았기 때문에 사역의 무게를 느꼈지만, 자신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임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와 진리 속에 담긴 부요함을 드러냈다. 따라서 이 책은 말라기의 정체성(곧 나의 사자)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만연된 상황에 대한 그의 이해와 그가 감당해야 했던 사역을 잘 드러내고 있다.

 

책의 목적

 

역사적 목적

말라기 메시지의 목적은 그의 시대에 영적인 부흥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도덕적이며 영적인 일탈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단호하고 확고한 열정을 가지고 말라기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진리를 떠난 것에 대해 책망했지만, 다른 한편 온유한 태도로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했다. 말라기는 율법을 믿지 않고 소홀히 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한 많은 사람의 교만하고 편협한 독선을 책망하면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격려했다.

 

예언적 목적

이 예언은 삼중적인 목적이 있다. 즉 말라기서는 메시아의 선두 주자(Forerunner)가 올 것이며, 이로써 자비의 때가 하나님의 진노의 날보다 앞설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3:1), 정련하시는 분으로서 주님이 모든 찌꺼기를 제거하고자 오실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3:2-3), 그리고 공의로운 해로서 주님이 심판을 집행하기 오실 것이지만, 여전히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시리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4:1-3) 기록되었다. 이 예언은 일반적으로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계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경고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또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적인 목적

다시 말해서, 말라기서 예언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즉 변함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밝히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맡기신 신성한 계시(즉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시대와 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영구적인 원칙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사역은 타락과 일탈이 일어나는 시대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는 사람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라기서는 주의 말씀의 짐이라(the burden of the word of the Lord, KJV을 보라)(1:1)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책의 세부 사항

 

이 책의 내용은 일정 기간 말라기에 의하여 구두(orally)로 전달되었던 것 같다. 이 예언의 주된 목적은 제사장들을 포함한 대다수 하나님의 백성들의 습관을 정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행들은 율법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 사이에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 예언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시행하는 개혁을 지원하고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책은 무관심과 부주의의 정신이 만연했음을 보여준다.

말라기는 백성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죄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었고, 따라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했던 그들의 주장이 행실과 불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라기 시대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상황은 오늘날 외적인 모양과 입술의 간증은 있지만, 실재성은 찾아보기 힘든 기독교계 사람들의 상태와 너무도 똑같다. 그는 진리를 진술하는 형식을 채택하고, 예상되는 이의제기 내용을 진술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이미 진술된 진리를 반복하고 입증하는 방식으로 답변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선지자들이 사용했던 하나의 주제를 수사학적으로 전개하는 대신에, 말라기는 질문과 답변을 통한 변증법을 사용한다. 이 예언의 두드러진 특징은, 여호와의 명령이 도전을 받는 8가지 상황들에 따라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여호와의 사랑에 대해서(1:2), 여호와의 이름을 경멸하는 것에 대해서(1:6), 그들의 제사로 인해 여호와를 더럽히는 것에 대해서(1:7), 결혼관계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일에 대해서(2:14), 여호와를 괴롭히는 일에 대해서(2:17), 여호와의 규례를 떠난 일에 대해서(3:7), 여호와의 것을 도적질한 일에 대해서(3:8), 그리고 말로 여호와를 대적하는 일에 대해서(3:13), 하나씩 다루고 있다. 계속 반복해서 자신들이 잘 섬기고 있다고 입술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마음으로는 자신을 떠난 것에 관하여 책망하셨고, 그들은 상황마다 그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혐의를 부정하며 반박했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그들이 완고한 상태에 빠져 있는 사태의 심각성을 현저하게 드러내는 것일 뿐이었다.

 

(F. C. Cook)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혐의에 대해서 도리어 질문하는 형태의 반박하는 답변이 피고인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청자(聽者)들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책망의 논지를 주장하고 설명하는 기회가 선지자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말라기는 공적인 예배나 예식의 순결함과 이스라엘의 독특한 성격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경외하는 태도와 신실함 또한 요구한다.

케일(C. F. Keil)은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 사이에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던 정신, 즉 바리새주의(Phariseeism)와 사두개주의(Saduceeism)로 고착화된 시대정신을 볼 수 있다. 가식적인 신앙이나 우상숭배와 같은 역겨운 종교심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통을 겪었던 백성에게는 완전히 혐오스럽게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더욱 세련된 형태의 우상숭배와 죽은 행실로 의를 쌓고자 하는 종교가 자리를 잡게 되었고, 죄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일도 없이 그저 하나님의 계명들을 겉으로만 순종하는 체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성전으로 돌아오시는 것이 기쁨과 위로의 때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스가랴와는 달리(2:10-12, 8:3), 말라기는 여호와께서 성전에 오시는 것은 곧 정화와 심판의 때가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3:1-3). 그 이유는 말라기 시대에 유다의 상태가 악화되었고, 성전이 재건된 이후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의 사랑을 경시하고 거절하는 백성들을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1:2-5). 이어서 그는 제사장들이 흠이 있는 희생제물을 바치고 또 거룩하지 못한 예배를 드리는 행위를 통해서 여호와를 무시하고 또 불경스러운 일을 자행하였기 때문에 여호와 이름의 영예와 존엄성을 모욕했음을 드러낸다(1:6-2:9). 그는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혼함으로써 민족적 소명을 무시하고 또 이스라엘인 아내와 이혼함으로써 저지른 배신과 부도덕함으로 인해서 주님의 거룩함을 더럽힌 일로 그들을 비난한다(2:10-17). 그는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고 또 악인들을 형벌하기 위하여 의로운 재판장으로 오시는 여호와의 오심을 선포한다(3:1-7). 그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의인보다 악인이 창성하기 때문에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자신들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에게 맞선다(3:8-15).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을 격려하고 또 미래 축복에 대한 약속을 소개함으로써 이 예언을 마치고 있다(3:16-4:6).

 

따라서 말라기는 하나님을 향한 그들 신앙의 불일치성과 불경스러운 태도를 지적한다. 그는 제사장들의 거룩하지 않은 행태를 책망하고, 그들이 망각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그분의 명령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혼에 대한 관행,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그들의 습관, 악인들의 악행에 대한 그들의 관용적인 태도를 비난한다. 그리고 그는 충성스러운 남은 자들이 해처럼 빛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피하라는 경고로 끝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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