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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문서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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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전하는전도 문서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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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 감사를 드리며 계속해서 전도출판사를 위해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먼 땅에서 온 좋은 기별(소책자)

  • 소비자가 6,000원
  • 저자 w. w. 페러데이 
  • 페이지수 128 
  • 출간일 23.10.30 
  • 판형 4*6 배판 (130*190) 
  • 판매가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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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먼 땅에서 온 좋은 기별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잠 25:25).

물은 복음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그같이 사용된 것을 발견합니다.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누가복음 19장의 므나의 비유에서 주님은 천국을 “먼 나라”로 비유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창세기를 시작하는 장들에서 천국은 매우 가까운 것처럼 보이며, 하나님이 이웃처럼 가까이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창조주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각종 음식이 풍성한 것을 봅니다. 이곳은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의 거처였고, 주 하나님이 그곳에 자주 오시곤 했으며, 그들 사이에 달콤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입니다. 하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에게 이런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사 59:2).
이처럼 죄가 들어옴으로 사람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기쁨은 멈추었고, 그때부터 천국은 “먼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천국과 땅 사이에는 어떠한 도덕성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먼 나라로부터 온 한 방문자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는 같은 장의 앞부분에서 그분이 바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바로 하나님이었던 그 영광스러운 분임을 읽게 됩니다. 게다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방문자인지요!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우리는 그분이 하시는 다음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그분을 불신하는 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요 6:42).
그들의 소경됨으로 인해 그들은 그분을 단지 목수의 아들로밖에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특별한 방문자들에 익숙해 있습니다. 때때로 황제들과 왕들이 방문합니다. 그들은 항상 잘 영접을 받고 변함없이 환송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0~11). 오래전 이사야서에 그분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 오셨을 때 거절을 당했을 뿐 아니라 죽임을 당했습니다. 포도원 비유를 통해 그분은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종을 그 농부들에게 보냈어도 소용이 없자, 마지막으로 그 포도원의 주인이 그 아들을 보내면서 “그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 아들은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자 그들은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마 21:38)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분의 놀라운 말씀과 행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분을 까닭 없이 미워했고 죽였습니다(요 15:22~14).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웨일즈의 젊은 왕자가 최근에 대륙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공경을 받았지만 만일 그가 살해당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도 당국자들에 의해 인가된 사건이었다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분명히 심각한 보복이 그 지역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헤드리언 황제의 동상이 안디옥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파괴되었을 때, 그 사람들은 그 일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살해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사도행전 1장에서 우리는 그분이 예전에 있던 곳으로 승천하실 때 사람들이 입혔던 상처를 지닌 채 천군 천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올려지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하셨습니까? 10일간의 잠잠함이 있었습니다. 그런 후 하늘이 다시 한번 열리고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죄악된 사람들을 멸망시키시려고? 아닙니다. 오히려 화평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의하면 우리는 베드로가 청중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끔찍한 죄를 범했노라고 도전했고, 그분의 이름으로 그들의 모든 죄가 사해질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구세주는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눅 24:47). 그분을 살해한 자들은 이처럼 복받는 첫 기회를 얻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이 복음은 정녕 먼 땅에서 온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노를 받아 마땅한데도 오히려 용서와 평안이 주어지다니!”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 같은 복에 열의를 갖지 않는지를 본문이 말해줍니다. 그들은 “목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냉수는 목마른 자에게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목마른 자들에게 부드러운 초청이 주어집니다. 계시록 22장 17절은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구세주가 부르는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러나 사람들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필요도 느끼지 않으며, 그러니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좋은 소식”이 오면 그들은 매우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 마을에 어떤 사람이 큰 재산이나 어떤 지위를 유산으로 받게 되었다면 그것이 재빨리 빅뉴스가 되어 퍼지지 않겠습니까? 혹은 집에 가까이 가는데 우리 중 어떤 사람에게 큰 유산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가 얼마나 흥분을 하겠습니까?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유산을 차지하고자 빨리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먼 땅에서 온 좋은 소식”, 즉 죄를 사함 받고 영원한 복에 관한 소식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그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먼 나라에서 온 그 방문자는 다시 오십니다. 세상은 아직 그분의 마지막 재림을 보지 못했습니다. 므나의 비유는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어떻게 돌아올 것입니까? 낮은 모습으로 두 번째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세를 가지고 그분의 모든 원수를 갚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로운 입에서 친히 말씀하시는 다음과 같은 끔찍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 19:27).
이것은 단지 비유적인 말씀이 아니며, 두려운 실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모든 사람을 위한 구세주로 말씀하시는 그분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산 자들은 그분이 재림하실 때 다루실 것이며, 죽은 자들은 그분이 마지막 때에 심판하러 부르실 것입니다.
서평


목차

무엇이 유익하리오? / 5
하나님의 검 / 9
두 위대한 질문 / 16
그 나귀와 그 양 / 24
죽음에 직면함 / 33
평안이냐? / 40
“나를” 그리고 “나의 죄들” / 49
먼 나라에서 온 좋은 소식 / 55
인간의 무지 / 63
평화-거짓과 참 / 70
한 황제의 회심 / 77
대제사장 여호수아 / 84
거룩한 불평 / 90
인간의 입 / 96
차별이 없음 / 103
그토록 놀라운 구원 / 112
창조주, 구세주, 아버지 / 119
약력
W. W. 페러데이

W. W. 페러데이는 1863년 영국에서 태어나 16세에 구원을 받고 거의 곧바로 말씀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평생을 성경 연구와 강해에 바쳤으며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여러 곳을 여행하며 스코틀랜드와 유럽 대륙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강해한 충실한 종으로서 아무 두려움도 모르고 한순간도 타협하지 않았으나 모두들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즐겨하던 표현 중에 “저는 강의를 하지 않고 사실을 말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는 어휘를 낭비하지 않았으며 가능한 가장 간결한 방식으로 기록했다. 그는 J. N. 다아비나 W. 켈리와 동일한 진리를 가르치되 단순하고 흥미로웠으며 그리고 종종 스릴 넘치는 표현으로 가르쳤다. 오늘날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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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먼 땅에서 온 좋은 기별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잠 25:25).

물은 복음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그같이 사용된 것을 발견합니다.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누가복음 19장의 므나의 비유에서 주님은 천국을 “먼 나라”로 비유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창세기를 시작하는 장들에서 천국은 매우 가까운 것처럼 보이며, 하나님이 이웃처럼 가까이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창조주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각종 음식이 풍성한 것을 봅니다. 이곳은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의 거처였고, 주 하나님이 그곳에 자주 오시곤 했으며, 그들 사이에 달콤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입니다. 하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에게 이런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사 59:2).
이처럼 죄가 들어옴으로 사람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기쁨은 멈추었고, 그때부터 천국은 “먼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천국과 땅 사이에는 어떠한 도덕성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먼 나라로부터 온 한 방문자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는 같은 장의 앞부분에서 그분이 바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바로 하나님이었던 그 영광스러운 분임을 읽게 됩니다. 게다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방문자인지요!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우리는 그분이 하시는 다음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그분을 불신하는 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요 6:42).
그들의 소경됨으로 인해 그들은 그분을 단지 목수의 아들로밖에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특별한 방문자들에 익숙해 있습니다. 때때로 황제들과 왕들이 방문합니다. 그들은 항상 잘 영접을 받고 변함없이 환송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0~11). 오래전 이사야서에 그분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 오셨을 때 거절을 당했을 뿐 아니라 죽임을 당했습니다. 포도원 비유를 통해 그분은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종을 그 농부들에게 보냈어도 소용이 없자, 마지막으로 그 포도원의 주인이 그 아들을 보내면서 “그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 아들은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자 그들은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마 21:38)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분의 놀라운 말씀과 행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분을 까닭 없이 미워했고 죽였습니다(요 15:22~14).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웨일즈의 젊은 왕자가 최근에 대륙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공경을 받았지만 만일 그가 살해당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도 당국자들에 의해 인가된 사건이었다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분명히 심각한 보복이 그 지역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헤드리언 황제의 동상이 안디옥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파괴되었을 때, 그 사람들은 그 일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살해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사도행전 1장에서 우리는 그분이 예전에 있던 곳으로 승천하실 때 사람들이 입혔던 상처를 지닌 채 천군 천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올려지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하셨습니까? 10일간의 잠잠함이 있었습니다. 그런 후 하늘이 다시 한번 열리고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죄악된 사람들을 멸망시키시려고? 아닙니다. 오히려 화평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의하면 우리는 베드로가 청중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끔찍한 죄를 범했노라고 도전했고, 그분의 이름으로 그들의 모든 죄가 사해질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구세주는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눅 24:47). 그분을 살해한 자들은 이처럼 복받는 첫 기회를 얻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이 복음은 정녕 먼 땅에서 온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노를 받아 마땅한데도 오히려 용서와 평안이 주어지다니!”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 같은 복에 열의를 갖지 않는지를 본문이 말해줍니다. 그들은 “목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냉수는 목마른 자에게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목마른 자들에게 부드러운 초청이 주어집니다. 계시록 22장 17절은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구세주가 부르는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러나 사람들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필요도 느끼지 않으며, 그러니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좋은 소식”이 오면 그들은 매우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 마을에 어떤 사람이 큰 재산이나 어떤 지위를 유산으로 받게 되었다면 그것이 재빨리 빅뉴스가 되어 퍼지지 않겠습니까? 혹은 집에 가까이 가는데 우리 중 어떤 사람에게 큰 유산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가 얼마나 흥분을 하겠습니까?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유산을 차지하고자 빨리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먼 땅에서 온 좋은 소식”, 즉 죄를 사함 받고 영원한 복에 관한 소식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그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먼 나라에서 온 그 방문자는 다시 오십니다. 세상은 아직 그분의 마지막 재림을 보지 못했습니다. 므나의 비유는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어떻게 돌아올 것입니까? 낮은 모습으로 두 번째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세를 가지고 그분의 모든 원수를 갚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로운 입에서 친히 말씀하시는 다음과 같은 끔찍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 19:27).
이것은 단지 비유적인 말씀이 아니며, 두려운 실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모든 사람을 위한 구세주로 말씀하시는 그분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산 자들은 그분이 재림하실 때 다루실 것이며, 죽은 자들은 그분이 마지막 때에 심판하러 부르실 것입니다.
서평


목차

무엇이 유익하리오? / 5
하나님의 검 / 9
두 위대한 질문 / 16
그 나귀와 그 양 / 24
죽음에 직면함 / 33
평안이냐? / 40
“나를” 그리고 “나의 죄들” / 49
먼 나라에서 온 좋은 소식 / 55
인간의 무지 / 63
평화-거짓과 참 / 70
한 황제의 회심 / 77
대제사장 여호수아 / 84
거룩한 불평 / 90
인간의 입 / 96
차별이 없음 / 103
그토록 놀라운 구원 / 112
창조주, 구세주, 아버지 / 119
약력
W. W. 페러데이

W. W. 페러데이는 1863년 영국에서 태어나 16세에 구원을 받고 거의 곧바로 말씀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평생을 성경 연구와 강해에 바쳤으며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여러 곳을 여행하며 스코틀랜드와 유럽 대륙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강해한 충실한 종으로서 아무 두려움도 모르고 한순간도 타협하지 않았으나 모두들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즐겨하던 표현 중에 “저는 강의를 하지 않고 사실을 말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는 어휘를 낭비하지 않았으며 가능한 가장 간결한 방식으로 기록했다. 그는 J. N. 다아비나 W. 켈리와 동일한 진리를 가르치되 단순하고 흥미로웠으며 그리고 종종 스릴 넘치는 표현으로 가르쳤다. 오늘날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가르쳤다.
리뷰


상세설명



먼 땅에서 온 좋은 기별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잠 25:25).

물은 복음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그같이 사용된 것을 발견합니다.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누가복음 19장의 므나의 비유에서 주님은 천국을 “먼 나라”로 비유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창세기를 시작하는 장들에서 천국은 매우 가까운 것처럼 보이며, 하나님이 이웃처럼 가까이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창조주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각종 음식이 풍성한 것을 봅니다. 이곳은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의 거처였고, 주 하나님이 그곳에 자주 오시곤 했으며, 그들 사이에 달콤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입니다. 하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에게 이런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사 59:2).
이처럼 죄가 들어옴으로 사람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기쁨은 멈추었고, 그때부터 천국은 “먼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천국과 땅 사이에는 어떠한 도덕성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먼 나라로부터 온 한 방문자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는 같은 장의 앞부분에서 그분이 바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바로 하나님이었던 그 영광스러운 분임을 읽게 됩니다. 게다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방문자인지요!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우리는 그분이 하시는 다음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그분을 불신하는 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요 6:42). 
그들의 소경됨으로 인해 그들은 그분을 단지 목수의 아들로밖에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특별한 방문자들에 익숙해 있습니다. 때때로 황제들과 왕들이 방문합니다. 그들은 항상 잘 영접을 받고 변함없이 환송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0~11). 오래전 이사야서에 그분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 오셨을 때 거절을 당했을 뿐 아니라 죽임을 당했습니다. 포도원 비유를 통해 그분은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종을 그 농부들에게 보냈어도 소용이 없자, 마지막으로 그 포도원의 주인이 그 아들을 보내면서 “그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 아들은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자 그들은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마 21:38)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분의 놀라운 말씀과 행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분을 까닭 없이 미워했고 죽였습니다(요 15:22~14).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웨일즈의 젊은 왕자가 최근에 대륙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공경을 받았지만 만일 그가 살해당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도 당국자들에 의해 인가된 사건이었다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분명히 심각한 보복이 그 지역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헤드리언 황제의 동상이 안디옥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파괴되었을 때, 그 사람들은 그 일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살해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사도행전 1장에서 우리는 그분이 예전에 있던 곳으로 승천하실 때 사람들이 입혔던 상처를 지닌 채 천군 천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올려지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하셨습니까? 10일간의 잠잠함이 있었습니다. 그런 후 하늘이 다시 한번 열리고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죄악된 사람들을 멸망시키시려고? 아닙니다. 오히려 화평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의하면 우리는 베드로가 청중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끔찍한 죄를 범했노라고 도전했고, 그분의 이름으로 그들의 모든 죄가 사해질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구세주는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눅 24:47). 그분을 살해한 자들은 이처럼 복받는 첫 기회를 얻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이 복음은 정녕 먼 땅에서 온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노를 받아 마땅한데도 오히려 용서와 평안이 주어지다니!”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 같은 복에 열의를 갖지 않는지를 본문이 말해줍니다. 그들은 “목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냉수는 목마른 자에게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목마른 자들에게 부드러운 초청이 주어집니다. 계시록 22장 17절은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구세주가 부르는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러나 사람들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필요도 느끼지 않으며, 그러니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좋은 소식”이 오면 그들은 매우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 마을에 어떤 사람이 큰 재산이나 어떤 지위를 유산으로 받게 되었다면 그것이 재빨리 빅뉴스가 되어 퍼지지 않겠습니까? 혹은 집에 가까이 가는데 우리 중 어떤 사람에게 큰 유산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가 얼마나 흥분을 하겠습니까?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유산을 차지하고자 빨리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먼 땅에서 온 좋은 소식”, 즉 죄를 사함 받고 영원한 복에 관한 소식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그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먼 나라에서 온 그 방문자는 다시 오십니다. 세상은 아직 그분의 마지막 재림을 보지 못했습니다. 므나의 비유는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어떻게 돌아올 것입니까? 낮은 모습으로 두 번째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세를 가지고 그분의 모든 원수를 갚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로운 입에서 친히 말씀하시는 다음과 같은 끔찍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 19:27). 
이것은 단지 비유적인 말씀이 아니며, 두려운 실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모든 사람을 위한 구세주로 말씀하시는 그분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산 자들은 그분이 재림하실 때 다루실 것이며, 죽은 자들은 그분이 마지막 때에 심판하러 부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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