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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서 개요 올바른 관점 열왕기서를 둘러싼 역사적, 고고학적, 그리고 시대적 논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위대한 메시지를 잊기 쉽다. 또한, 종종 역대기에서 역사적 사실을 보충하는 데 시간을 쓰면서 열왕기서가 불완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두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약 450년의 통일 이스라엘과 두 개로 나뉜 이스라엘 왕조 기록을 따라가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열왕기 기자는 이 기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세세히, 그리고 철저하게 기록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는 신중히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달될 사건들을 선택했다. 열왕기서 두 권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주제에 너무 깊이 함몰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열왕기서의 저자는 선지자 예레미야이나, 이 흥미로운 믿음에 대한 많은 찬반 논쟁이 있다. 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활발히 활동했던 기간인 요시야와 그의 후계자들의 시대를 다루는 기록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아마도 그는 고의로 저자인 자신의 이름을 숨겼다고 할 수 있겠다. 열왕기서는 원래 한 권의 책이었으나 후에 헬라와 라틴어 번역자들이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70인역에서는 사무엘상,하와 함께 묶여서 열왕기3, 4서라고 불렸다. 여러 가지 논쟁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저자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학개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사자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학 1:13) 쓴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이 두 책을 연구할 때 올바른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을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을뿐더러, 더 나아가 앞으로 다가올 일들의 그림자로써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 의도 두 권의 책은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왕조의 멸망에 이르는 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왕국은 북의 열 지파(이스라엘)와 남쪽의 두 지파(유다)로 나뉜다. 두 번째 책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왕국을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을 이중으로 포위하며 백성들을 포로로서 바벨론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왕하 24,25장). 기록된 마지막 사건은 에윌므로닥이 바벨론 유수 37년 되는 해에 감옥에서 유다 왕 여호와긴을 풀어주는 장면이다(왕하 25:27-30). 학자마다 이 기간의 정확한 날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독자들은 기원전 1012년부터 기원전 562년까지, 총 450년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므로 저자는 바벨론 유수 72년의 후반부에 기록을 위한 역사적인 자료들을 모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저자는 이 책을 역사적인 사건기록 이상의 것으로 의도한 것이 틀림없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분명히 전달하고자 했다. 물론 그는 사건들에 대해 전혀 논평하지 않았고 여지를 남겨두어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각자 결론을 내리도록 했다. 메시지의 명확성 주님은 우상숭배를 싫어하신다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의 첫머리에 쓰여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 20:3,5). 그분은 백성들에게 완전한 충성을 요구하셨다. 그랬기에 우상숭배는 백성들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성전을 건축하고 그 안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찬 것을 보았던 솔로몬조차도 다른 신을 쫓았으며, 왕국에서 우상에게 향을 올리고 제사 지내는 것을 허용했다(왕상 11:5-10). 저자는 솔로몬 이후의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역사를 순서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상숭배가 만연하도록 허용한 북이스라엘 왕국은 결국 그로 인해 멸망을 초래하게 된다. 저자의 바벨론 유수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즉, 주님께서 그분에게 등을 돌리고 말씀을 거역하여 다른 신을 섬긴 백성들을 심판하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그분의 징계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 시대에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참으로 그때는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후 배교의 어두운 시대가 도래했고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결과, 점점 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우상숭배가 정점에 달했던 아합의 시대에는 엘리야와 그의 동료 선지자들을 통해 주님의 말씀이 누차 선포되었다. 열왕기서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문구는 46번 나온다. 46번 중 31번이 영적 진리에 전혀 순종하고자 하지 않던 이스라엘의 악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왕들을 중점적으로 다룬 열왕기상에 나왔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벨론 유수에 대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즉, 백성들이 이러한 치욕을 당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원인이었으나, 미래의 축복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말씀이 그들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의 율법책을 재발견한 유다왕 요시아의 반응은, 백성들이 심판을 피할 길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교훈을 준다(왕하 23:1-3). 주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은혜로우시다 두 권의 책에서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만큼이나, 노하기를 더디하심과 은혜로우심 역시 스스로를 악에 팔아버린 사람들이 초래한 어두운 시대와 대비되어 선명하게 나타난다. 독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시하는 악한 통치차에게 오래 참으시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의 약속은…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분께서는 심지어 아합과 같은 자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위안인 동시에 도전이 되는 메시지는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물을 사유하시며…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신다”(미 7:18)는 것이다. 주님은 주권자이시다 열왕기서에서는 종종 마치 악인이 상황에 대한 주권을 잡고 있고 하나님의 목적과 약속이 좌절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상숭배가 그 땅을 휩쓸어 주님에 대한 진정한 제사를 모두 전멸시킨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낙심한 엘리야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패역한 왕들은 주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은 충실한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졌다. 또한, 유다의 유일한 여왕이었던 아달랴가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을 때”, 그리스도가 오실 다윗의 계보를 거의 진멸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전부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한 아들이 죽임당하지 않도록 하셨고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도록”(왕하 11:1-3) 안배하셨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통제하고 계심을 알려주는 열왕기서의 많은 예 중 일부에 불과하다. 주님께서 바벨론 포로 중 신실한 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고 그분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는 틀림없이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악한 유다 왕 여호람의 통치와 관련한 저자의 메시지는 고무적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왕하 8:19). 합당치 못한 멍에는 영적인 파멸을 가져온다 바로의 딸과 결혼한 솔로몬(왕상 3:1), 이세벨과 결혼한 아합(왕상 16:31), 아람 왕 벤하닷과 맺은 아합의 약조(왕상 20:34), 유다의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왕상 22:4), 그리고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의 결혼(왕하 8:16-18)은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하는 자에게 파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들이다. 현시대에의 적용 신약성경 저자들은 은혜의 경륜을 사는 신자들에게 구약성경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종종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약의 구절들을 신약에 포함하거나 인용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 5:21).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고 돌보셨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다른 죄들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채 심판이 임하게 되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전 10:6-7). 그 뒤에 그는 또다시 비슷하게 경고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 11,14).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우상숭배는 왕국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지속적인 특징이었으나, 슬프게도 오늘날도 여전히 주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다. 오늘날의 우상숭배는 구약 시대의 것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을지 모르나, 주님이 요구하고 바라시는 것과 반대로 신자들의 삶의 최우선에서 주님을 제거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는 여전히 동일하다.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 이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알고 순종할 때만 우상숭배에서 멀어질 수 있고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더 자주 들려진다. 아합을 비롯한 악한 왕들은 한 번도 주님의 인도를 직접 구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참으로 말씀을 무시하며 사는 길을 더 선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이 자신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종교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참된 진리인 성경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스며든 거짓 가르침으로 혼란에 빠진 신자들에게 정반대로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갈 4:30). 아합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순종하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야고보는 이렇게 서술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말의 첫머리는 명령이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딤후 4:2-3).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딛 2:11)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은혜는 군주제인 열왕기 시대에서 계속 나타나는데, 심지어 아합과 이세벨의 개탄스러운 통치 기간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왕이 은혜를 무시했고 그 결과 그들은 백성들과 함께 파멸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이에 대한 답변은 명확하다.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2). 그는 디도서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온 것을 설명하면서 구원을 얻은 자는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아야 함”(딛 2:12)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 많은 왕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들의 삶을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시 93:1) 이스라엘의 패역한 왕들은 왕국 통치자가 자신들이 아닌 주님이라는 사실을 어려운 방법으로 배워야만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뜻대로 행하고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막을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께서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찬송 작사가는 다음과 같이 신자들의 소망과 확신에 대해 표현했다. 하나님께서는 해가 거듭될수록 그분의 목적을 이루고 계시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이루고 계시고, 그분의 때는 가까워져 오네 그때는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반드시 오리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이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그때가 - A.C 아이그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 6:14). 신자들이 불신자와 합당치 못한 멍에를 메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때, 그러한 결정 뒤에는 영적 파산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열왕기서의 분명한 경고를 들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적용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4-17). 그러므로 열왕기서의 저자가 바벨론의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묵상한다면 모든 세대의 독자들에게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슬프게도, 주님의 백성들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는 데 더딘 탓에 동일한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우상숭배, 간음,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것, 그리고 불평과 같은 것이 그들의 삶에서 너무 자주 보인다(고전 10:7-11). 바울은 현실에 안주하는 위험성에 대해 소리높여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하나님 계획의 완성 열왕기서가 정당한 후계자인 솔로몬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아도니야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지혜, 부유함, 정의로움, 그리고 평화로 특징지어진 솔로몬의 왕국은 앞으로 다가올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스러운 날이 밝기 전, 마치 아도니야가 왕좌를 빼앗으려고 시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고 전 세계를 통치하려는 사탄,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악한 삼두정치가 있을 것이다. 7년 대환란의 기간에 그들은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열왕기서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우상숭배, 거짓 종교,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완벽한 무시는 앞으로 다가올 이 어두운 시대의 그림이다. 그러나 열왕기서의 시대와 같이, 하나님에 거역하는 모든 것에 무릎 꿇기를 거부한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며, 사탄과 그 종들의 궁극적인 운명이 불못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격려가 된다(계 20:10). |
|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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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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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3 서문…………………………………………………………………4 헌사…………………………………………………………………7 약어표………………………………………………………………8 참고 문헌…………………………………………………………10 열왕기서 개요……………………………………………………14 |
| 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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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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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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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서 개요 올바른 관점 열왕기서를 둘러싼 역사적, 고고학적, 그리고 시대적 논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위대한 메시지를 잊기 쉽다. 또한, 종종 역대기에서 역사적 사실을 보충하는 데 시간을 쓰면서 열왕기서가 불완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두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약 450년의 통일 이스라엘과 두 개로 나뉜 이스라엘 왕조 기록을 따라가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열왕기 기자는 이 기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세세히, 그리고 철저하게 기록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는 신중히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달될 사건들을 선택했다. 열왕기서 두 권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주제에 너무 깊이 함몰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열왕기서의 저자는 선지자 예레미야이나, 이 흥미로운 믿음에 대한 많은 찬반 논쟁이 있다. 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활발히 활동했던 기간인 요시야와 그의 후계자들의 시대를 다루는 기록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아마도 그는 고의로 저자인 자신의 이름을 숨겼다고 할 수 있겠다. 열왕기서는 원래 한 권의 책이었으나 후에 헬라와 라틴어 번역자들이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70인역에서는 사무엘상,하와 함께 묶여서 열왕기3, 4서라고 불렸다. 여러 가지 논쟁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저자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학개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사자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학 1:13) 쓴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이 두 책을 연구할 때 올바른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을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을뿐더러, 더 나아가 앞으로 다가올 일들의 그림자로써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 의도 두 권의 책은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왕조의 멸망에 이르는 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왕국은 북의 열 지파(이스라엘)와 남쪽의 두 지파(유다)로 나뉜다. 두 번째 책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왕국을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을 이중으로 포위하며 백성들을 포로로서 바벨론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왕하 24,25장). 기록된 마지막 사건은 에윌므로닥이 바벨론 유수 37년 되는 해에 감옥에서 유다 왕 여호와긴을 풀어주는 장면이다(왕하 25:27-30). 학자마다 이 기간의 정확한 날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독자들은 기원전 1012년부터 기원전 562년까지, 총 450년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므로 저자는 바벨론 유수 72년의 후반부에 기록을 위한 역사적인 자료들을 모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저자는 이 책을 역사적인 사건기록 이상의 것으로 의도한 것이 틀림없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분명히 전달하고자 했다. 물론 그는 사건들에 대해 전혀 논평하지 않았고 여지를 남겨두어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각자 결론을 내리도록 했다. 메시지의 명확성 주님은 우상숭배를 싫어하신다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의 첫머리에 쓰여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 20:3,5). 그분은 백성들에게 완전한 충성을 요구하셨다. 그랬기에 우상숭배는 백성들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성전을 건축하고 그 안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찬 것을 보았던 솔로몬조차도 다른 신을 쫓았으며, 왕국에서 우상에게 향을 올리고 제사 지내는 것을 허용했다(왕상 11:5-10). 저자는 솔로몬 이후의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역사를 순서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상숭배가 만연하도록 허용한 북이스라엘 왕국은 결국 그로 인해 멸망을 초래하게 된다. 저자의 바벨론 유수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즉, 주님께서 그분에게 등을 돌리고 말씀을 거역하여 다른 신을 섬긴 백성들을 심판하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그분의 징계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 시대에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참으로 그때는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후 배교의 어두운 시대가 도래했고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결과, 점점 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우상숭배가 정점에 달했던 아합의 시대에는 엘리야와 그의 동료 선지자들을 통해 주님의 말씀이 누차 선포되었다. 열왕기서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문구는 46번 나온다. 46번 중 31번이 영적 진리에 전혀 순종하고자 하지 않던 이스라엘의 악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왕들을 중점적으로 다룬 열왕기상에 나왔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벨론 유수에 대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즉, 백성들이 이러한 치욕을 당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원인이었으나, 미래의 축복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말씀이 그들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의 율법책을 재발견한 유다왕 요시아의 반응은, 백성들이 심판을 피할 길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교훈을 준다(왕하 23:1-3). 주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은혜로우시다 두 권의 책에서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만큼이나, 노하기를 더디하심과 은혜로우심 역시 스스로를 악에 팔아버린 사람들이 초래한 어두운 시대와 대비되어 선명하게 나타난다. 독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시하는 악한 통치차에게 오래 참으시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의 약속은…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분께서는 심지어 아합과 같은 자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위안인 동시에 도전이 되는 메시지는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물을 사유하시며…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신다”(미 7:18)는 것이다. 주님은 주권자이시다 열왕기서에서는 종종 마치 악인이 상황에 대한 주권을 잡고 있고 하나님의 목적과 약속이 좌절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상숭배가 그 땅을 휩쓸어 주님에 대한 진정한 제사를 모두 전멸시킨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낙심한 엘리야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패역한 왕들은 주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은 충실한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졌다. 또한, 유다의 유일한 여왕이었던 아달랴가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을 때”, 그리스도가 오실 다윗의 계보를 거의 진멸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전부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한 아들이 죽임당하지 않도록 하셨고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도록”(왕하 11:1-3) 안배하셨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통제하고 계심을 알려주는 열왕기서의 많은 예 중 일부에 불과하다. 주님께서 바벨론 포로 중 신실한 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고 그분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는 틀림없이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악한 유다 왕 여호람의 통치와 관련한 저자의 메시지는 고무적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왕하 8:19). 합당치 못한 멍에는 영적인 파멸을 가져온다 바로의 딸과 결혼한 솔로몬(왕상 3:1), 이세벨과 결혼한 아합(왕상 16:31), 아람 왕 벤하닷과 맺은 아합의 약조(왕상 20:34), 유다의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왕상 22:4), 그리고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의 결혼(왕하 8:16-18)은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하는 자에게 파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들이다. 현시대에의 적용 신약성경 저자들은 은혜의 경륜을 사는 신자들에게 구약성경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종종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약의 구절들을 신약에 포함하거나 인용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 5:21).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고 돌보셨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다른 죄들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채 심판이 임하게 되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전 10:6-7). 그 뒤에 그는 또다시 비슷하게 경고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 11,14).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우상숭배는 왕국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지속적인 특징이었으나, 슬프게도 오늘날도 여전히 주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다. 오늘날의 우상숭배는 구약 시대의 것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을지 모르나, 주님이 요구하고 바라시는 것과 반대로 신자들의 삶의 최우선에서 주님을 제거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는 여전히 동일하다.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 이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알고 순종할 때만 우상숭배에서 멀어질 수 있고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더 자주 들려진다. 아합을 비롯한 악한 왕들은 한 번도 주님의 인도를 직접 구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참으로 말씀을 무시하며 사는 길을 더 선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이 자신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종교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참된 진리인 성경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스며든 거짓 가르침으로 혼란에 빠진 신자들에게 정반대로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갈 4:30). 아합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순종하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야고보는 이렇게 서술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말의 첫머리는 명령이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딤후 4:2-3).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딛 2:11)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은혜는 군주제인 열왕기 시대에서 계속 나타나는데, 심지어 아합과 이세벨의 개탄스러운 통치 기간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왕이 은혜를 무시했고 그 결과 그들은 백성들과 함께 파멸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이에 대한 답변은 명확하다.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2). 그는 디도서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온 것을 설명하면서 구원을 얻은 자는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아야 함”(딛 2:12)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 많은 왕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들의 삶을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시 93:1) 이스라엘의 패역한 왕들은 왕국 통치자가 자신들이 아닌 주님이라는 사실을 어려운 방법으로 배워야만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뜻대로 행하고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막을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께서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찬송 작사가는 다음과 같이 신자들의 소망과 확신에 대해 표현했다. 하나님께서는 해가 거듭될수록 그분의 목적을 이루고 계시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이루고 계시고, 그분의 때는 가까워져 오네 그때는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반드시 오리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이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그때가 - A.C 아이그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 6:14). 신자들이 불신자와 합당치 못한 멍에를 메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때, 그러한 결정 뒤에는 영적 파산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열왕기서의 분명한 경고를 들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적용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4-17). 그러므로 열왕기서의 저자가 바벨론의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묵상한다면 모든 세대의 독자들에게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슬프게도, 주님의 백성들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는 데 더딘 탓에 동일한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우상숭배, 간음,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것, 그리고 불평과 같은 것이 그들의 삶에서 너무 자주 보인다(고전 10:7-11). 바울은 현실에 안주하는 위험성에 대해 소리높여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하나님 계획의 완성 열왕기서가 정당한 후계자인 솔로몬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아도니야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지혜, 부유함, 정의로움, 그리고 평화로 특징지어진 솔로몬의 왕국은 앞으로 다가올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스러운 날이 밝기 전, 마치 아도니야가 왕좌를 빼앗으려고 시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고 전 세계를 통치하려는 사탄,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악한 삼두정치가 있을 것이다. 7년 대환란의 기간에 그들은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열왕기서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우상숭배, 거짓 종교,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완벽한 무시는 앞으로 다가올 이 어두운 시대의 그림이다. 그러나 열왕기서의 시대와 같이, 하나님에 거역하는 모든 것에 무릎 꿇기를 거부한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며, 사탄과 그 종들의 궁극적인 운명이 불못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격려가 된다(계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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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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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서 개요 올바른 관점 열왕기서를 둘러싼 역사적, 고고학적, 그리고 시대적 논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위대한 메시지를 잊기 쉽다. 또한, 종종 역대기에서 역사적 사실을 보충하는 데 시간을 쓰면서 열왕기서가 불완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두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약 450년의 통일 이스라엘과 두 개로 나뉜 이스라엘 왕조 기록을 따라가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열왕기 기자는 이 기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세세히, 그리고 철저하게 기록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는 신중히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달될 사건들을 선택했다. 열왕기서 두 권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주제에 너무 깊이 함몰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열왕기서의 저자는 선지자 예레미야이나, 이 흥미로운 믿음에 대한 많은 찬반 논쟁이 있다. 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활발히 활동했던 기간인 요시야와 그의 후계자들의 시대를 다루는 기록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아마도 그는 고의로 저자인 자신의 이름을 숨겼다고 할 수 있겠다. 열왕기서는 원래 한 권의 책이었으나 후에 헬라와 라틴어 번역자들이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70인역에서는 사무엘상,하와 함께 묶여서 열왕기3, 4서라고 불렸다. 여러 가지 논쟁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저자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학개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사자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학 1:13) 쓴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이 두 책을 연구할 때 올바른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을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을뿐더러, 더 나아가 앞으로 다가올 일들의 그림자로써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 의도 두 권의 책은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왕조의 멸망에 이르는 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왕국은 북의 열 지파(이스라엘)와 남쪽의 두 지파(유다)로 나뉜다. 두 번째 책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왕국을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을 이중으로 포위하며 백성들을 포로로서 바벨론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왕하 24,25장). 기록된 마지막 사건은 에윌므로닥이 바벨론 유수 37년 되는 해에 감옥에서 유다 왕 여호와긴을 풀어주는 장면이다(왕하 25:27-30). 학자마다 이 기간의 정확한 날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독자들은 기원전 1012년부터 기원전 562년까지, 총 450년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므로 저자는 바벨론 유수 72년의 후반부에 기록을 위한 역사적인 자료들을 모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저자는 이 책을 역사적인 사건기록 이상의 것으로 의도한 것이 틀림없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분명히 전달하고자 했다. 물론 그는 사건들에 대해 전혀 논평하지 않았고 여지를 남겨두어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각자 결론을 내리도록 했다. 메시지의 명확성 주님은 우상숭배를 싫어하신다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의 첫머리에 쓰여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 20:3,5). 그분은 백성들에게 완전한 충성을 요구하셨다. 그랬기에 우상숭배는 백성들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성전을 건축하고 그 안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찬 것을 보았던 솔로몬조차도 다른 신을 쫓았으며, 왕국에서 우상에게 향을 올리고 제사 지내는 것을 허용했다(왕상 11:5-10). 저자는 솔로몬 이후의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역사를 순서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상숭배가 만연하도록 허용한 북이스라엘 왕국은 결국 그로 인해 멸망을 초래하게 된다. 저자의 바벨론 유수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즉, 주님께서 그분에게 등을 돌리고 말씀을 거역하여 다른 신을 섬긴 백성들을 심판하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그분의 징계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 시대에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참으로 그때는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후 배교의 어두운 시대가 도래했고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결과, 점점 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우상숭배가 정점에 달했던 아합의 시대에는 엘리야와 그의 동료 선지자들을 통해 주님의 말씀이 누차 선포되었다. 열왕기서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문구는 46번 나온다. 46번 중 31번이 영적 진리에 전혀 순종하고자 하지 않던 이스라엘의 악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왕들을 중점적으로 다룬 열왕기상에 나왔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벨론 유수에 대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즉, 백성들이 이러한 치욕을 당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원인이었으나, 미래의 축복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말씀이 그들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의 율법책을 재발견한 유다왕 요시아의 반응은, 백성들이 심판을 피할 길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교훈을 준다(왕하 23:1-3). 주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은혜로우시다 두 권의 책에서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만큼이나, 노하기를 더디하심과 은혜로우심 역시 스스로를 악에 팔아버린 사람들이 초래한 어두운 시대와 대비되어 선명하게 나타난다. 독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시하는 악한 통치차에게 오래 참으시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의 약속은…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분께서는 심지어 아합과 같은 자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위안인 동시에 도전이 되는 메시지는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물을 사유하시며…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신다”(미 7:18)는 것이다. 주님은 주권자이시다 열왕기서에서는 종종 마치 악인이 상황에 대한 주권을 잡고 있고 하나님의 목적과 약속이 좌절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상숭배가 그 땅을 휩쓸어 주님에 대한 진정한 제사를 모두 전멸시킨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낙심한 엘리야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패역한 왕들은 주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은 충실한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졌다. 또한, 유다의 유일한 여왕이었던 아달랴가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을 때”, 그리스도가 오실 다윗의 계보를 거의 진멸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전부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한 아들이 죽임당하지 않도록 하셨고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도록”(왕하 11:1-3) 안배하셨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통제하고 계심을 알려주는 열왕기서의 많은 예 중 일부에 불과하다. 주님께서 바벨론 포로 중 신실한 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고 그분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는 틀림없이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악한 유다 왕 여호람의 통치와 관련한 저자의 메시지는 고무적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왕하 8:19). 합당치 못한 멍에는 영적인 파멸을 가져온다 바로의 딸과 결혼한 솔로몬(왕상 3:1), 이세벨과 결혼한 아합(왕상 16:31), 아람 왕 벤하닷과 맺은 아합의 약조(왕상 20:34), 유다의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왕상 22:4), 그리고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의 결혼(왕하 8:16-18)은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하는 자에게 파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들이다. 현시대에의 적용 신약성경 저자들은 은혜의 경륜을 사는 신자들에게 구약성경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종종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약의 구절들을 신약에 포함하거나 인용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 5:21).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고 돌보셨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다른 죄들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채 심판이 임하게 되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전 10:6-7). 그 뒤에 그는 또다시 비슷하게 경고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 11,14).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우상숭배는 왕국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지속적인 특징이었으나, 슬프게도 오늘날도 여전히 주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다. 오늘날의 우상숭배는 구약 시대의 것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을지 모르나, 주님이 요구하고 바라시는 것과 반대로 신자들의 삶의 최우선에서 주님을 제거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는 여전히 동일하다.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 이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알고 순종할 때만 우상숭배에서 멀어질 수 있고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더 자주 들려진다. 아합을 비롯한 악한 왕들은 한 번도 주님의 인도를 직접 구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참으로 말씀을 무시하며 사는 길을 더 선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이 자신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종교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참된 진리인 성경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스며든 거짓 가르침으로 혼란에 빠진 신자들에게 정반대로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갈 4:30). 아합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순종하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야고보는 이렇게 서술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말의 첫머리는 명령이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딤후 4:2-3).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딛 2:11)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은혜는 군주제인 열왕기 시대에서 계속 나타나는데, 심지어 아합과 이세벨의 개탄스러운 통치 기간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왕이 은혜를 무시했고 그 결과 그들은 백성들과 함께 파멸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이에 대한 답변은 명확하다.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2). 그는 디도서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온 것을 설명하면서 구원을 얻은 자는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아야 함”(딛 2:12)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 많은 왕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들의 삶을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시 93:1) 이스라엘의 패역한 왕들은 왕국 통치자가 자신들이 아닌 주님이라는 사실을 어려운 방법으로 배워야만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뜻대로 행하고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막을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께서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찬송 작사가는 다음과 같이 신자들의 소망과 확신에 대해 표현했다. 하나님께서는 해가 거듭될수록 그분의 목적을 이루고 계시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이루고 계시고, 그분의 때는 가까워져 오네 그때는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반드시 오리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이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그때가 - A.C 아이그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 6:14). 신자들이 불신자와 합당치 못한 멍에를 메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때, 그러한 결정 뒤에는 영적 파산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열왕기서의 분명한 경고를 들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적용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4-17). 그러므로 열왕기서의 저자가 바벨론의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묵상한다면 모든 세대의 독자들에게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슬프게도, 주님의 백성들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는 데 더딘 탓에 동일한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우상숭배, 간음,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것, 그리고 불평과 같은 것이 그들의 삶에서 너무 자주 보인다(고전 10:7-11). 바울은 현실에 안주하는 위험성에 대해 소리높여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하나님 계획의 완성 열왕기서가 정당한 후계자인 솔로몬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아도니야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지혜, 부유함, 정의로움, 그리고 평화로 특징지어진 솔로몬의 왕국은 앞으로 다가올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스러운 날이 밝기 전, 마치 아도니야가 왕좌를 빼앗으려고 시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고 전 세계를 통치하려는 사탄,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악한 삼두정치가 있을 것이다. 7년 대환란의 기간에 그들은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열왕기서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우상숭배, 거짓 종교,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완벽한 무시는 앞으로 다가올 이 어두운 시대의 그림이다. 그러나 열왕기서의 시대와 같이, 하나님에 거역하는 모든 것에 무릎 꿇기를 거부한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며, 사탄과 그 종들의 궁극적인 운명이 불못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격려가 된다(계 20:10). |
|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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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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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3 서문…………………………………………………………………4 헌사…………………………………………………………………7 약어표………………………………………………………………8 참고 문헌…………………………………………………………10 열왕기서 개요……………………………………………………14 |
| 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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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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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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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서 개요 올바른 관점 열왕기서를 둘러싼 역사적, 고고학적, 그리고 시대적 논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위대한 메시지를 잊기 쉽다. 또한, 종종 역대기에서 역사적 사실을 보충하는 데 시간을 쓰면서 열왕기서가 불완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두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약 450년의 통일 이스라엘과 두 개로 나뉜 이스라엘 왕조 기록을 따라가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열왕기 기자는 이 기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세세히, 그리고 철저하게 기록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는 신중히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달될 사건들을 선택했다. 열왕기서 두 권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주제에 너무 깊이 함몰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열왕기서의 저자는 선지자 예레미야이나, 이 흥미로운 믿음에 대한 많은 찬반 논쟁이 있다. 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활발히 활동했던 기간인 요시야와 그의 후계자들의 시대를 다루는 기록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아마도 그는 고의로 저자인 자신의 이름을 숨겼다고 할 수 있겠다. 열왕기서는 원래 한 권의 책이었으나 후에 헬라와 라틴어 번역자들이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70인역에서는 사무엘상,하와 함께 묶여서 열왕기3, 4서라고 불렸다. 여러 가지 논쟁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저자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학개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사자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학 1:13) 쓴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이 두 책을 연구할 때 올바른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을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을뿐더러, 더 나아가 앞으로 다가올 일들의 그림자로써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 의도 두 권의 책은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왕조의 멸망에 이르는 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왕국은 북의 열 지파(이스라엘)와 남쪽의 두 지파(유다)로 나뉜다. 두 번째 책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왕국을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을 이중으로 포위하며 백성들을 포로로서 바벨론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왕하 24,25장). 기록된 마지막 사건은 에윌므로닥이 바벨론 유수 37년 되는 해에 감옥에서 유다 왕 여호와긴을 풀어주는 장면이다(왕하 25:27-30). 학자마다 이 기간의 정확한 날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독자들은 기원전 1012년부터 기원전 562년까지, 총 450년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므로 저자는 바벨론 유수 72년의 후반부에 기록을 위한 역사적인 자료들을 모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저자는 이 책을 역사적인 사건기록 이상의 것으로 의도한 것이 틀림없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분명히 전달하고자 했다. 물론 그는 사건들에 대해 전혀 논평하지 않았고 여지를 남겨두어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각자 결론을 내리도록 했다. 메시지의 명확성 주님은 우상숭배를 싫어하신다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의 첫머리에 쓰여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 20:3,5). 그분은 백성들에게 완전한 충성을 요구하셨다. 그랬기에 우상숭배는 백성들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성전을 건축하고 그 안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찬 것을 보았던 솔로몬조차도 다른 신을 쫓았으며, 왕국에서 우상에게 향을 올리고 제사 지내는 것을 허용했다(왕상 11:5-10). 저자는 솔로몬 이후의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역사를 순서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상숭배가 만연하도록 허용한 북이스라엘 왕국은 결국 그로 인해 멸망을 초래하게 된다. 저자의 바벨론 유수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즉, 주님께서 그분에게 등을 돌리고 말씀을 거역하여 다른 신을 섬긴 백성들을 심판하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그분의 징계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 시대에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참으로 그때는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후 배교의 어두운 시대가 도래했고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결과, 점점 더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우상숭배가 정점에 달했던 아합의 시대에는 엘리야와 그의 동료 선지자들을 통해 주님의 말씀이 누차 선포되었다. 열왕기서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문구는 46번 나온다. 46번 중 31번이 영적 진리에 전혀 순종하고자 하지 않던 이스라엘의 악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왕들을 중점적으로 다룬 열왕기상에 나왔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벨론 유수에 대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즉, 백성들이 이러한 치욕을 당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원인이었으나, 미래의 축복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말씀이 그들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의 율법책을 재발견한 유다왕 요시아의 반응은, 백성들이 심판을 피할 길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교훈을 준다(왕하 23:1-3). 주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은혜로우시다 두 권의 책에서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만큼이나, 노하기를 더디하심과 은혜로우심 역시 스스로를 악에 팔아버린 사람들이 초래한 어두운 시대와 대비되어 선명하게 나타난다. 독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시하는 악한 통치차에게 오래 참으시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의 약속은…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분께서는 심지어 아합과 같은 자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위안인 동시에 도전이 되는 메시지는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물을 사유하시며…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신다”(미 7:18)는 것이다. 주님은 주권자이시다 열왕기서에서는 종종 마치 악인이 상황에 대한 주권을 잡고 있고 하나님의 목적과 약속이 좌절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상숭배가 그 땅을 휩쓸어 주님에 대한 진정한 제사를 모두 전멸시킨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낙심한 엘리야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패역한 왕들은 주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은 충실한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졌다. 또한, 유다의 유일한 여왕이었던 아달랴가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을 때”, 그리스도가 오실 다윗의 계보를 거의 진멸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전부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한 아들이 죽임당하지 않도록 하셨고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도록”(왕하 11:1-3) 안배하셨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통제하고 계심을 알려주는 열왕기서의 많은 예 중 일부에 불과하다. 주님께서 바벨론 포로 중 신실한 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고 그분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는 틀림없이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악한 유다 왕 여호람의 통치와 관련한 저자의 메시지는 고무적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왕하 8:19). 합당치 못한 멍에는 영적인 파멸을 가져온다 바로의 딸과 결혼한 솔로몬(왕상 3:1), 이세벨과 결혼한 아합(왕상 16:31), 아람 왕 벤하닷과 맺은 아합의 약조(왕상 20:34), 유다의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왕상 22:4), 그리고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의 결혼(왕하 8:16-18)은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하는 자에게 파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들이다. 현시대에의 적용 신약성경 저자들은 은혜의 경륜을 사는 신자들에게 구약성경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종종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약의 구절들을 신약에 포함하거나 인용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 5:21).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고 돌보셨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다른 죄들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채 심판이 임하게 되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전 10:6-7). 그 뒤에 그는 또다시 비슷하게 경고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 11,14).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우상숭배는 왕국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지속적인 특징이었으나, 슬프게도 오늘날도 여전히 주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다. 오늘날의 우상숭배는 구약 시대의 것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을지 모르나, 주님이 요구하고 바라시는 것과 반대로 신자들의 삶의 최우선에서 주님을 제거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는 여전히 동일하다.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 이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알고 순종할 때만 우상숭배에서 멀어질 수 있고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더 자주 들려진다. 아합을 비롯한 악한 왕들은 한 번도 주님의 인도를 직접 구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참으로 말씀을 무시하며 사는 길을 더 선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씀이 자신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종교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참된 진리인 성경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스며든 거짓 가르침으로 혼란에 빠진 신자들에게 정반대로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갈 4:30). 아합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순종하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야고보는 이렇게 서술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말의 첫머리는 명령이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딤후 4:2-3).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딛 2:11)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은혜는 군주제인 열왕기 시대에서 계속 나타나는데, 심지어 아합과 이세벨의 개탄스러운 통치 기간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왕이 은혜를 무시했고 그 결과 그들은 백성들과 함께 파멸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이에 대한 답변은 명확하다.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2). 그는 디도서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온 것을 설명하면서 구원을 얻은 자는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아야 함”(딛 2:12)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 많은 왕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들의 삶을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시 93:1) 이스라엘의 패역한 왕들은 왕국 통치자가 자신들이 아닌 주님이라는 사실을 어려운 방법으로 배워야만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뜻대로 행하고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막을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께서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찬송 작사가는 다음과 같이 신자들의 소망과 확신에 대해 표현했다. 하나님께서는 해가 거듭될수록 그분의 목적을 이루고 계시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이루고 계시고, 그분의 때는 가까워져 오네 그때는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반드시 오리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이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그때가 - A.C 아이그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 6:14). 신자들이 불신자와 합당치 못한 멍에를 메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때, 그러한 결정 뒤에는 영적 파산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열왕기서의 분명한 경고를 들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적용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4-17). 그러므로 열왕기서의 저자가 바벨론의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묵상한다면 모든 세대의 독자들에게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슬프게도, 주님의 백성들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는 데 더딘 탓에 동일한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우상숭배, 간음,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것, 그리고 불평과 같은 것이 그들의 삶에서 너무 자주 보인다(고전 10:7-11). 바울은 현실에 안주하는 위험성에 대해 소리높여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하나님 계획의 완성 열왕기서가 정당한 후계자인 솔로몬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아도니야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지혜, 부유함, 정의로움, 그리고 평화로 특징지어진 솔로몬의 왕국은 앞으로 다가올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스러운 날이 밝기 전, 마치 아도니야가 왕좌를 빼앗으려고 시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고 전 세계를 통치하려는 사탄,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악한 삼두정치가 있을 것이다. 7년 대환란의 기간에 그들은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열왕기서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우상숭배, 거짓 종교,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완벽한 무시는 앞으로 다가올 이 어두운 시대의 그림이다. 그러나 열왕기서의 시대와 같이, 하나님에 거역하는 모든 것에 무릎 꿇기를 거부한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며, 사탄과 그 종들의 궁극적인 운명이 불못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격려가 된다(계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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